나중에 애를 낳으면,

나중에 나 닮은 녀석이 생기면, 이 친구는 그림을 그리는 공부를 시키고 싶다.

그림도 그릴 줄 알고, 언어도 최소 영어는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으면서

컴퓨터 프로그램 언어도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결국 그의 삶인데,

부모가 된 입장에서는 많은 것을 그에게 원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그의 의사에 반하여 나는 그에게 좋지 않은 부모로 생각될 지도 모른다.

 

사는 것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일이다.

한가지 일만 잘해도 사는데 불편하지 않을 수 도 있고,

여러 가지를 잘해도 사는데 불편할 수 도 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은 이런 뜻이리라.

 

사람에게 욕심이 있다는 것은 때로는 좋지만, 결코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욕심 때문에 아프다.

 

욕심은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우리는 많은 소모를 하게 된다.

시간을 소모할 수 도 있고, 경제적인 것을 소모할 수 도 있다.

욕심은 형이하학적이면서 형이상학적인 것이다.

 

단순히 시간이나 경제적인 소모뿐 아니라, 건강이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 욕심이다.

 

어떤 사람들은 간절하게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마치 조언처럼 해주곤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현재에 만족하는 삶을 살도록 이야기한다.

 

어떤 것이 맞고 틀리는지 나이 40세에도 항상 혼란스럽다.

 

확실한 것 하나는 사람은 기본적인 소비가 필요하고, 최소한 그 기본적인 소비를 위한 어떤 활동은 지속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정의한 단어는 없다.

 

단순하게 ‘의식주’로 알려져 있는 이 상황? 혹은 현상?에는 비용이 들어가는데,

‘의식주’비용을 혹자는 ‘물가’라는 단어로 형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물가’는 ‘의식주 비용’을 형용하기 알맞은 단어는 아니다.

사전적인 정의는 없지만, ‘기본 생활 비용'(줄여서 ‘기본 생활비’)라는 말을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것을 봐서는

이렇게 불리는 것이 더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기본생활비를 어느 정도 부담할 정도의 수익을 보전하면서도 사람들 사이에서 별 탈없이 사는 사람이 되는 것 만으로도 내 아이는 “성공을 했다.”라고 말해 주고 싶다.

내 주변에 어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의 기대(욕심)에 치여 자신의 삶을 살기보다는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사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 모든 부모의 기대(욕심)에 부응을 하고 나서야 비로서 자신의 삶을 살기 시작하는 이들도 있고,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삶에 의심하고 눈치를 보면서 사는 이들도 있다.

 

강남에 100평짜리 집, 고급 외제승용차,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을 두르는 것이 과연 삶의 목표로 옳은 일 일까?

 

최소한 내 아이는 그런 것들에 동경을 갖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이 성공에 잣대로 활용되지 않았으면 한다.

 

나 역시 내 아이가 자신이 하는 일에 소신을 갖고, 그것이 옳다고 믿으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나는 더 바랄 것이 없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20170619@소셜 네트워크 마케팅 플랫폼(SNMP) 사장 현주훈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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