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영속성)’에 대하여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속해 있는 생태계이다.

<출처:구글이미지>

사람들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하는 이야기를 하곤하는데,

먼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달걀이 부화하여 닭이 되고, 닭이 다시 달걀을 낳는 계속적인 관계에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 생물학적인 순환구조는 계속을 이해하기 가장 좋은 ‘예’이다.

<출처:구글이미지>

생물적인 생태계의 순환을 위해서는 객체수에 대한 평형이 필요한데, 대부분 계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상위 포식자로 올라갈수록 객체 수가 작아지는 피라미드 구조를 갖게 된다.

상위 포식자 일수록 더 많은 하위 포식자를 섭취하여야 생존에 따른 에너지를 보충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이 생태계의 모습은 우리 인간사회에도 비슷하게 적용되는데,

아래에 첨부되는 그림을 보면 이해가 쉽다.

<출처:구글이미지>

<출처: http://blog.donga.com/kyujanghan/archives/10043 >

중소/벤처기업을 중견기업으로 이런 중견기업을 다시 대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M&A라는 과정을 통해 흡수되고 새력을 키워나간다.

흡수가 된 기업의 임직원들은 일정기간 고용이 유지되었다가 기술을 남기고 퇴직을 해야한다.

물론 대기업의 임직원들도 마찬가지이긴하다.

여기서 일반적인 생태계와 인간의 사회와 가장 큰 차이가 하나 생긴다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알고 있다.

“대기업은 죽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당대에 망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음 세대에 계속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동물계의 최상위 포식자인 사자인 사자의 평균 수명은 12년정도로, 평균 수명이 7년 정도인 야생토끼에 비해 다소 길 뿐이지 언젠가는 죽어서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생각하는 계속은 끊임 없는 순환구조를 갖게 되는 어떤 상태이다.

그 순환 구조를 갖게되기 위해서는 어떤 시점에는 시작이 되고, 성장을 하다가

성장의 정점에 도달 후 쇠퇴하다가 어떤 시점에는 소멸된다.

소멸되더라도 다시 다음세대의 또다른 생물들이 그 생태계의 질서위에서 삶을 영위하게 된다.

우리가 어떤 일을 행함에 있어서 계속이라고 함은,

영원불멸의 어떤 상황이 아니다.

세대가 다음세대로 진화하면서 계속적으로 삶을 추구해가는 과정이다.

어쩌면 나는 이 긴 생태계의 시간속에 잠깐동안 생존했던 사람일 수 도 있다.

이 찰라의 시간속에 무엇인가를 남겨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는 사람일 수 도 있다.

계속적인 것을 추구하려면, 항상 ‘다음’을 기약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시작한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음사람들도 계속할 수 있어야 하고,

나와 동대(동일한 세대)에 사람들의 참여가 이루어져야 이를 계승하려는 사람들도 생겨나게 될 것이다.

계속된다는 것은 결국 시작되어 성장하다 쇠퇴하고 소멸되는 것에 반복이다.

나는 그것을 ‘질서(cosmos )‘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즉, 소멸되더라도 지워지지 않는 것.

결국 질서가’계속’을 만드는 것이다.

최근 창조경제의 여파로 많은 창업생태계가 생겨났다는 말은 무성하지만,

그들 사이에 ‘질서’가 아직 명확하지는 않다.

시장의 ‘질서’는 국가나 정부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몫인 것이다.

그 ‘질서’가 성문화 된 어떤 것이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묵시적 동의’든 새로 생겨난 생태계의 구성원들이 스스로 ‘질서’를 만들지 못하면

결국 생태계는 허울뿐인 말로 끝날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 마케팅 플랫폼 (SNMP) 현주훈 사장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