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에게는 무술이 필요할까?

요즘 핀테크 포럼에서 알게된 김선일 교수님께서 한양대학교에서 운영하고 계신 교환 학생들을 위한 태권도 프로그램인 ‘태권도 히어로즈’에 참여를 하며 오랜만에 도장에서 운동했던 것 처럼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태권도 히어로즈의 페이스북 그룹 링크는 다음과 같다.

https://www.facebook.com/groups/1549414708621923/

이곳에 오는 외국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외국에는 무술을 딱히 배우는 곳이 없겠구나 싶더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건강과 신변보호?를 위해 어려서부터 검도, 유도, 태권도, 합기도 등등등…의 참 많은 ‘도’와 마주한다. 다시말해서 한국사람은 외쿡분들에 비해 싸우는 기술을 좀 안다고 할 수도 있겠다. ㅋㅋ

군대 전역 후 거의 15년만에 태권도 도복 입고, 띠 두르고 한껏 어색해진 내모습도 웃기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유튜브를 통해 무술과 관련된 다른 영상들을 찾고 있는 모습이 더 웃긴다.

나이 마흔에 왠 늦바람이냐???

“실전이 아니면 인정이 없고, 인정이 없으면 존중이 없고, 존중이 없으면 존경이 없다.” 라는 최영의 (최배달) 사부님의 말씀을 접하고 28살 때부터 극진공수도를 한 1년가량 하면서 생각보다 시간을 내서 도장을 찾아가 운동을 한다는게 쉽지 않았다.

운동을 쉬다 보니 결국 나는 돼지가 되어있더라… ㅠ,.ㅠ

그래서 최근 7년간 수련한 운동은 ‘시스테마’였는데, 내가 좋아하는 Mikhail Ryabko 를 점점 닮아가는 것인지 나는 초 울트라급 돼지가 되어버렸다.

(미카엘 랴브코의 유튜브 영상 : https://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systema+mikhail+ryabko)

태권도 히어로즈에 참여하면서 한동안 잊고 있던 한국무술에 대한 향수가 생겼다. 그래서 최근에는 태견이나 다시 해볼까? 라는 생각도 갖게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태견이 무술중에 유일하게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호~”

그래서 더 조사해 보니, 태견도 벌써 파벌이 생겨서 한국태견이 있고, 결련태견이 있고, 위대태껸이 있고, ‘옛법’이라는 결련태견의 명맥을 지키려는 사람도 있더라.

내심 마음에 든 것은 결련태견이였는데, 요즘 결련태견과 위대태껸?간에 밥그릇 싸움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요 쟁점이 누가 오리지날이냐? 하는 점인데, 이 부분은 항상 무도사회에 등장하는 화두다.

사실 내가 극진공수도에 관심이 사그러지게 된 결정적인 이후도, 최배달 사부의 사후에 극진공수도가 극진회, 극진회관, 신극진 이렇게 3개의 파벌로 나뉘고 다들 자신들의 수련법이 맞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대충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정말 쌈 꾼(파이터)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극진의 수련법은 너무 가혹하다.

파벌이 생기면, 각 파벌간에 묘~한 경쟁이 붙는데 중국 무술에서는 이를 ‘문파’라고 이야기 하면서 이 문파들 간의 다툼이 ‘강호’라는 아주 멋과 풍유를 아는 사회로 그려지면서 수많은 홍콩 무술영화들의 소재가 되었었다.

어쩌면 느와르(noir)장르의 시초가 이런 영화들이 아니였을까? 싶기도 한데, 요즘 사회로 이야기 하면 조폭(조직폭력배) 얘기다.

이야기가 너무 벗어났다.

중국 영화 이야기를 했으니, 무슨’권’, 무슨’권’ 이라고 불리는 권법과 우리 주변에서 이야기 하는 무슨’도’, 무슨’도’ 이런 무술은 왜 생겨났고, 우리는 왜 이런 것을 배우려고 하는 것일까?

인간에게 폭력은 역사다.

한 마을을 억압하고, 약탈하고, 착취하면서 새로운 문화가 성장을 한다.

문화는 누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겨야 발생하는 것들이다.

마을은 조금 더 큰 도시로 확대되고,

도시는 국가로 확대된다.

우리가 역사를 배울 때, 동북아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는 잦은 이민족의 숱한 침략에도 굳건히 나라를 지켜온 것 처럼 이야기 되지만,

고구려, 신라, 백제, 고려, 발해, 조선 등등의 우리 역사 속에 나라들은 대체 무엇일까?

분명히 멸망했고, 유민이 발생하고 새로운 왕조가 생기면서 이전 나라의 기득권들을 배척하고 신흥권력자들이 생겨나고, 새로운 문화가 생겨난다.

그냥 한반도의 지역에 과거 이야기를 마치 우리는 우리의 역사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본론이야기를 이어가자면,

폭력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 아니면 폭력으로 굴복시키기 위해서 사람들이 연구한 것의 결과물이 무술일 것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 이르면서 성문화 된 형법으로 살인이나 상해를 죄로 다루기 시작하면서 현대 사람들 사이에 폭력을 행사 하는 방법이나 폭력에 대항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은 배워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의미가 없어졌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무슨’도’라고 하는 무술들과 그 무술들을 경제적인 대가를 받고 전수(교육)하는 사람들은 은 직접적인 폭력보다는 몸의 움직임을 통해 정신을 통제하는 것을 강조하여 무도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나는 사실 이 부분에는 논란에 여지가 많다 것을 인정한다 . 무력을 정의롭게 쓰기 위해 정신의 통제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고, 몸에 움직임을 통해 정신을 통제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할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 이기 때문에 그렇다.)

특히 태권도, 유도와 같이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무도의 경우, 경제적인 활동이 가능하도록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았었고, 덕분에 현재는 지도자도 많고, 체계적인 교육시스템도 갖춰져 있지만 지나치게 지도자만 많아지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도 되고, 지나치게 경기용으로만 치우친 훈련 체계가 과연 실전 무술로 효과가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된다.

외국에 어떤 이가 10가지 무술을 꼽았는데, 링크는 다음과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CBBx08fSytk

위의 링크에 영상을 보면, 1등으로 당선된 녀석이 이름도 낯선 크라브마가라는 무술이다.

이건 또 뭔가 해서 검색해 보니, 이스라엘 무술이더라.

 

https://www.youtube.com/watch?v=e9lUygdDUW4

강력범죄에 노출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단편적인 호신방법들이 노출되어 있는 영상인데, 이 영상을 보면서 우리에게 무술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작용이 있다면, 반작용이 있다는 게 인지상정이고, 음과 양의 조화 같은 자연에 이치 일 것이다.

그동안 내가 여러가지 무술을 수련하다 보니, 폭력을 행사하는 방법을 알아야 그 폭력에 대항하는 방법을 더 쉽게 알 수 있기도 한 것 같더라.

폭력이 나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누군가 폭력을 나에게 행사할 때, 가만히 그 폭력을 수용하는 것은 좋은 방법은 아니다.

절대 맞은 사람은 집에가서 두다리 뻣고 못잔다.(항상 우리 어머니는 반대로 말씀하셨다.)

때문에 나는,

정의(正義)롭지 못하게 가해지는 폭력에 맞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무술은 필요하다.

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의롭다는 것을 교육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정의롭다는 것을 인지하는 상황에도 분명 작용과 반작용이 있고, 빛과 그림자가 시선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유태인은 이 배우게 되는 ‘정의(正義)’는 공동체의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한다.

(‘태양의 후예’의 유시진 대위가 밝혔던 약자(弱者)는 ‘미인’과 ‘노인’과 ‘어린이’이였다.)

이미 몇 년 전에 나는 폭력으로부터 보호한다는 것에 대한 정의(의미)를,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폭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를 포기하게 만드는 상태” 로 정한 바 있었다.

상대방의 의도를 포기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면, 극진공수도의 수련방법(체력을 키우고 맷집을 키운 다음에 타격을 연습하는 방법)은 과하고, 그렇다고 태권도 처럼 너무 타격 위주의 수련방법도 맞지 않는다. 합기도나 아키도에서 처럼 관절기 중심의 보호를 위한 공격을 하기 위해서는 체력적 한계를 뛰어넘어야 하고, 결국 무술은 적당한 것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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