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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과 돈벌기

https://news.nate.com/view/20200527n00159?mid=n1006

위 기사의 댓글을 읽다 보니 어떤 이의 댓글이 눈에 밟힌다.

80년대에도 90년대에도 학벌이 좋아서 돈많이 벌던 시대가 아니다. 그건 2000년대에도 2010년대에도 그래왔었고,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람들은 ‘돈’에 대한 이해가 너무 없다. ‘돈’의 정의가 없는데 어떻게 돈을 벌 수 있겠는가?
하물며, ‘돈’을 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돈’을 모을 수 있겠는가?

과거 시절에 학벌이 좋아야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은 지나치게 자신이 돈을 못번 이유가 공부를 못해서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이 공부를 못한 이유를 학비를 제공해주지 못한 부모에게서 찾는다던가 적절한 과외 등의 사교육이 부족해서라고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그렇다.

학벌이 좋은데 돈까지 잘 벌려면, 대인관계도 잘해야 하고 무엇보다 위계가 있는 조직에서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기 보다는 상명하복에 대한 이해가 높으면 됐다.
공부를 많이 한 덕에 돈을 많이 번것이 아니라 공부는 조직에 들어가기 위한 입장권 같은 것이고, 들어가게 된 조직에 오랫동안 머무르는 것이 돈을 벌게 해 주는 것이라는 의미다.

그 조직은 다음과 같다.
대기업, 공기업, 중앙정부, 사법기관, 지방정부…
정년이 보장되는 아주 안정적인 직장이라고 생각되는 곳들이다.

그것이 ‘입신양명’이고, ‘출세’인가 하는 생각은 두고두고 나의 숙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풍조 때문에 더욱 명확해진 것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의미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사람들은 노동자에 의해 학습을 배운다.

그 노동자적 감성이 교육과 학습을 지적 이데아로 이끌기 보다는 “나같은 인생을 살지말고, 너(학생)는 좋은 조직의 입장권을 끊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 그것이 너의 부모님이 원하시는 것이기도 하고 그게 ‘효도’하는 길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친구들과 경쟁해서 이겨야 한다.”는 특이한 논리로 평가를 위한 교육으로 아이들을 지나치게 소비시킨다.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바는 ‘잘 살기’가 분명하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쉴 수 있으면 분명히 잘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엄청 많은 돈이 필요할 것 같겠지만, 사실 그것도 아니다.

‘잘’의 정도를 어떻게 잡는가에 따라 다르지만, 여하튼 먹고, 입고, 쉬기 위해 들어야 하는 비용이 그리 많이 들지는 않는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어떻게든 그 호기심을 풀어내고자 하는 탐구적인 사람도 있지만, 탐구에는 별 관심도 없는 이들도 상당수 있다.
탐구에는 별 관심 없지만,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좋아하고 특별한 조건이 부가되지 않더라도 스스로 행복한 방법을 알고 있는 이들 말이다.

모두가 진학을 해야하는 것 처럼 사회가 몰고가는 영향이 없지 않아 있지만, 탐구적인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모두 진학한 덕분에 학교가 아주 난잡해졌다.

학교를 정치적인 색깔을 갖추고, 이념으로 사람을 무장시키는 기관 세뇌시키는 기관으로 변질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이런 시국을 걱정하시는 어른들도 계시니 말이다.

순수하게 인류를 위해 학문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은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사실 그 이유도 ‘돈’에 있다.

학문을 하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한데, 이 ‘돈’이 ‘돈’을 벌지 못할 것 같은 곳에는 모이지 않는다.

가령 내가,
“‘단군신화에 대한 연구’를 하려고 하니 지원을 해주쇼~” 라고 했다고 가정하자.

누가 연구지원을 할 수 있겠는가?

왜 연구지원을 하지 않겠는가?

대한국민이라면 시조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문제는 시조에 대한 사실을 안다고 해서 그 사실이 돈으로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돈이 되지 못하는 연구에는 자금이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푼돈이 들어오고, 그 푼돈으로도 연구하고 싶은 사람이거나 다른 연구 주제에 참여하지 못한 떨거지들이 모여서 애매모호한 결과들을 도출시키기 때문에 결국은 연구자체의 의미가 없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어느시점 부터 ‘시장논리’, 그러니까 ‘돈의 이유(의미)’에 따라 좌우되는 시대에 접어들었고,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의대에 입학한 어떤이가 내게 특이한 자신의 교수의 질문을 들려줬는데, 이것은 참으로 오랜 여운을 만들어 냈다.

지금 부터 여러분이 졸업을 해서 인턴을 나가고 레지던트를 겪은 후에 전문의가 될 때까지 투자해야 되는 시간은 10년이고, 경제적으로는 돈이 약 1억이 듭니다.

그렇게 투자를 했다고 여러분이 매년 1억이상을 벌 수 있는 의사가 될 수 있을지도 불분명합니다.

차라리 지금 1억을 투자해서 10년간 갈비집을 운영하는 것이 돈을 버는 것에는 더 유리할 수 도 있습니다.

앞으로 최소 10년간은 하루에 3~4시간 밖에 자지 못하고, 일년에 하루도 못쉴 수 도 있고, 당신은 일반적인 사람이 겪는 가장 우울하고 슬픈 환경에 노출될 수도 있습니다.

하루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선택하시고 내일 등교여부를 결정하세요.

모 의과대학 교수님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준 사람의 의지가 다행히 ‘돈을 벌기 위해서 의사가 되겠어!’는 아니였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웃어넘길 수 있었지만, ‘돈을 벌기 위해 의사가 되겠어!’라고 생각을 했다면 글쎄다. 심각한 고민이 필요한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 다음날 등교를 하지 않은 이도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돈’은 해당 경제권역(해당 ‘돈(화폐)’으로 경제활동이 가능한 물리적인 지역/공간)에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신념이다.

그리고 이 신념은 ‘가치의 척도’이다.

따라서 ‘돈’을 벌겠다고 하는 사람은 ‘가치’를 값어치 있게 인정받을 수 있으면 된다.
기껏해야 자신의 물리적인 시간을 지시에 따라 기계적으로 제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사람의 ‘시간’의 가치는 같은 물리적인 시간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다지 높은 값어치를 받을 수 없다.

생각해보자,

A라는 고깃집과 B라는 고깃집이 있는데 A와 B는 가격도 같고, 맛도 같다. 이런 경우 당신은 A와 B 중에 어떤 식당으로 가겠는가?

당연히 고민되겠지만 이 사례에 변수하나를 더 등장시키면 고민이 좀 덜 수고스러워 질 것이다.

A는 바로 집앞이라서 걸어서 5분 이내에 도착이 가능하고,
B는 차로 1시간을 이동해야 한다.

당연히 A를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어야 한다. 이동에 따른 시간을 경제적 가치로 평가한다면, A로의 이동은 시간적으로 55분의 불필요한 비용을 치르지 않아도 되고, 차량이 이동하면서 부가적으로 소비해야할 비용에 대해서도 고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례에 다른 변수를 하나 더 첨가해 보자.

A는 다소 지저분한 상가에 1층에 다소 낡은 허접한 인테리어로 되어있는 식당이고, B는 교외에 깔끔하게 지어진 최신식 단독 식당건물로 주변에 경관마저 힐링이 되는 곳이다.

단순하게 식사에 목적이 있다면, 지저분한 상가이거나 말거나 이고, 낡고 허접한 인테리어이거나 말거나 식사만 하면 된다. 하지만, 두식당의 1인분 식사 가격이 5만원이라고 하고, 4사람이 식사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에는 기왕에 ‘돈 쓰는 거’라는 생각 때문에 ‘좋은거 하자’는 의외에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경제적 관념”은 ‘돈을 쓰는데’에도 반영되지만,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돈을 버는데’에도 활용이 가능하다.
문제는 ‘돈을 버는 것’은 고려하지 않고, 남들이 다 그렇다고 하니까 ‘돈을 벌기 위한 조건’에 촛점을 두고, 심지어 그 촛점도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이라는 엉뚱한 곳을 향한다는 것이다.

공부를 많이 해야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면, 학사 아니라 석사 박사 그이상의 공부를 한 사람은 재벌이어야 한다.

우리 부모님은 나를 ‘관료’로 키우고 싶어하셨다.
내 적성은 ‘관료’이기 보다는 ‘기술자’이고, ‘장사치’였는데도 그런 내 적성을 알아보시지 못하시고, 오히려 ‘기술자’들의 품행을 폄하하셨고, 중고거래를 하던 내게 ‘장사치’가 될 거냐고 다그치시기도 하셨다.

이는 성장과정에서 많은 혼란을 가중시켰다.
왜냐하면, 그렇게 평가를 하셨지만 내 부모님도 돈이 넉넉한 분들은 아니셨기 때문이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돈’을 벌겠다고 하는 사람은 ‘가치’를 값어치 있게 인정받을 수 있으면 된다.

기존에 없던 신기술은 기존의 기술을 얼만큼 극복하고 추가적으로 어떤 편리함을 제공할 수 있는가에 따라 차별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신기술을 만들려면 과거로 부터 이어지는 기술에 대한 이해와 추가적인 ‘순수한 호기심’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순수한 호기심’은 “이것이 ‘돈’이 되는 기술이다”라는 명제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꼭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것이거나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돈’이 되는 기술은 ‘돈’이 많은 사람이나 조직에 의해 이미 연구가 되어 있고, 되고 있고, 될 수도 있다.

진정 ‘돈’을 벌기를 원한다면, 영업을 배우고 익히길 추천한다.

영업의 기술을 깨닭게 되면, 자신이 취급하는 제품 혹은 서비스에 차별된 가치를 부여하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

같은 제품을 팔더라도 잘파는 영업사원 A와 못파는 영업사원 B가 존재한다.

영업의 기술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가치를 납득시키기’이다.
A는 제품의 가치를 고객에게 이해시킨 사람이고, B는 고객에게 이해를 못시켰거나 스스로도 이해를 못한 사람일 수 있다.

굳이 내가 돈을 써서 이것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가 합당하면 사람들은 돈을 쓰고, 이것을 다른 말로 ‘구매’라고 한다.

그리고, 이에 상대 행위자의 입장에서는 ‘판매’라고 한다.

공부를 많이 해서 결국 어떤 조직이나 회사에 들어간다고 하면, 그 공부를 많이 한 가치는 그 조직이나 회사의 잣대에 맞춰질 수 밖에 없다.
연봉을 많이 제시해서 그 회사에 지원했고, 입사하게 된 덕분에 그동안의 공부한 가치는 딱 그 금액으로 정해지는 것이다.

80년대 90년대가 아니라서 공부 많이 했다고 성공하고, 돈 많이 벌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고?

그 시절에도 돈 번사람들은 다 나름대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노력’들을 해왔고, 그런 이유로 자타가 인정하는 성공도 한 것이고 그 댓가로 가치를 인정받아 돈도 벌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신은 무슨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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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시장 of after COVID19

멍청이들에게 “신 시장”이라고 하면,

“어떻게 하면 돈을 버나?”

멍청한 마켓터

로 고민을 시작한다. 그동안도 그렇게 고민을 했기 때문에 늘 그모냥 그꼴로 사는 거다.

시장에 대한 이해도 없이 무조껀 돈을 벌기 위한 욕심을 부리려고 하니 그게 되나?


신 시장은 ‘어떻게’ 가 중요한게 아니라 ‘왜’ 가 중요한 것이다.

“왜 돈을 쓰는가?”

로 시작을 해야 비로서 답을 갖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결핍’된 상태임을 인지 해야 그 결핍된 상태을 벗어나기 위해 요구가 생기고, 그 요구가 심해져서 욕구가 되면 결심, 결정을 하게 된다. 비로서 소비자들이 돈을 쓴다는 소리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소비의 패턴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알고자 했던 가설들이 너무 판매자 중심으로 접근했던 이유 때문에 그렇다.

제 2차 산업혁명 이후 자유시장 논리로 따져보면, 판매자가 선택지를 주면 소비자들은 선택지 중에 선택하여 소비하게 되는 구조였다.

늘 문제는 구식의 학습을 부정하지 않는데에서 부터 기인한다.

COVID19는 사회에 무척 큰 변화를 만들었다. 시장 형성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대면’ 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얼마전 모 기업 특강에서도 이야기를 했지만, 요즘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소비를 못하는 것이 아니다.
돈을 쓸 수 없는 환경 때문에 소비를 할 수 없는 것이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소비를 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에 소비를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결국 인간은 생존에 대한 지극히 당연한 문제에 대한 해결을 위해서만 소비를 하게 된다.

자신 그리고 자신과 공간 같은 공간에 머무르는 가족의 생존을 위한 소비만 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우리가 생존이라고 하는 것에는 ‘의식주’가 있다.
그나마 ‘의식주’가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은 도시의 콘크리트로 구축되어진 건축물에서 안전하게 생활을 도모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대부분의 현대인들에게 외부의 사람들과에 접촉이 없는, 그러니까 자의적인 두문불출이 아닌 문 밖의 세상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필요한 것이 딱히 있을까?

과거에는 TV에서 맛집이 소개 되면, 찾아가서 먹어보기 위해서 일단 옷도 필요하고, 화장품도 필요하고, 이동 수단도 필요하고, 이동 수단을 사용하기 위한 제품들도 필요하고, 이동하면서 사용할 제품도 필요하는 등 단순히 집을 나서서 무엇인가의 활동을 위한 수많은 선택에 따른 요구들이 진짜 필요한 것이라는 착각을 만들어서 이 요구들을 해소시킬 수 있는 소비를 해왔었지만, 현재 우리의 상황은 나가는 것 자체가 문제되는 것이다.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갖은 것이 너무 많아서 죽을 때까지 살 수 있는 공간이 확보 되어 있다는 전재에서 적당히 끼니를 때울 식량과 물만 있어도 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요구가 사라졌다.

아무게가 입고 나와서 이미지나 평판이 좋아 보였던 옷도, 그 옷을 판매하기 위한 전략으로 회자되었던 ‘패션’이라는 것도 그냥 한두벌의 홈웨어 그나마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다 커버가 된다.
사실 패션이라는게 다른 사람들에 평가가 되지 않는다면 딱히 이유가 없는 것이기도 하다.

외부활동의 제약은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허용하지 않거나 그 만남의 범위를 제한하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 그러니까 다른사람의 판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식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적당히 자신의 몸을 더위나 추위로 부터 지켜줄 수 있으면 그만이다.

어떻게 보면, 과거에 외부의 사람들과 교류가 가장 빈번했던 사람들이 학생들이다. 그런데, 학생들도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다보니 다른 학생들로 부터 얻게 되는 정보나 자극에 반응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견물생심으로 깨닭았던 ‘결핍’의 문제를 겪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고분분투 중이고, 그 명칭이 ‘신시장 개척’이다.

신시장을 만들어 COVID19 이후를 준비하는 기업에게 조언을 하자면,

어떤것이 사람들에게 없고, 그 없는 것이 왜 사람들에게 필요한지 이해해야하며, 현재 우리 기업이 할 수 있는 것들이 사람들에게 꼭 필요하다는 이유를 만드는 것이다.

과거나 지금의 소비자와 COVID19 이후의 소비자들의 생활 패턴은 많이 다를 것이다. 그 다름을 발빠르게 읽어내지 못한다면 재기의 기회가 없어질 것이다.

과거의 시장을 보는 관점으로 머무른 채로 COVID19 상황이 안정되거나 종료되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무책임하다.
하루 빨리 피봇팅을 추천하면서 이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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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들을 이기적이다.

최근 방문한 한 장례식장…

나는 개인적으로 장례식장에 가는 것을 나쁘게 생각치는 않는다.

대부분의 장례식장에 가면 돌아가신 분의 영귀(이하 ‘영가’)가 분주하게 돌아다닌다.

“너도 왔구나, 어떻게 지냈어?”

뭐 이런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이 장례식장에는 영가들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영가가 한 사람에게 내려서 그럴 수도 있고, 영가가 미처 당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영가들은 이기적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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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view : 개관 (槪觀)

내가 2004년 부터 내 고객들과 내 가망고객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백지 화법에는 
본인 스스로의 “인생을 Over view 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내 삶의 모습을 대략적으로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알아야
비로서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신념? 같은 것이 있었고, 
지금도 그 신념은 변화하지 않는다.

최소한 나는 그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내일의 나’이다.

일반적인 도시의 사람들은 어렵게 아침에 눈을 뜨고, 사회생활에 부대끼다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덜너덜 해진 채로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와서는 자신도 알 수 없는 순간에 다시 잠에 빠져든다.

그리고 몇해가 지나 ‘고작 이렇게 밖에 못 살았구나!’라며 한탄을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사니까 고작 그렇게 밖에 못사는 거다.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푸념에 이유를 자신의 내부에서 찾기 보다는 외부적인 요소들로 채우려하고, 이것을 통해 위안을 받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위안도, 해결책도, 보완책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다.

다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이 무너져 내릴 만큼 너무 힘드니까 그러는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너무 삶을 짧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하루쯤은 진지하게 자신의 인생을 개관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 방법을 알지 못해서 도움이 필요하다면, 내가 얼마든지 도울 수 있으니 누구라도 편하게 연락해도 된다.

부디 자신의 인생에 오롯한 주인공이 그대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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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누군가로의 삶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가장 잘한다.

그리고 그 잘하는 일을
계속하고자 하는 것을 ‘꿈’이라고 말하고
다른 이들은 이것을
‘자아의 실현’이라고 말하곤 한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누군가의 자녀이고, 누군가의 제자이고, 누군가의 무언가이다.
참 아이러니 하게도 인간은
누군가의 누군가가 되어 버리고,

그렇게 누군가에게 종속적인 관계성의 우리는 ‘사회성’라고 하고,
그 ‘사회성’을 갖는 무리를 ‘사회’라고 한다.

때문에 일반적인 사람들은 스스로의 의견에 앞서기 보다는
그 누군가들이 하는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여짓껏 나는 몰랐지만, 혹시라도 그 누군가가 말한 그 누군가와 같은 그런 사람이면 어떻게 하나?’라는 질문을 갖게 된다.
이 말은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지 못한채, 사회적 자아만 인지하게 되는 상황인 것이다.

이 사회적 자아에 대한 편견이 본연의 자아, 그러니까 ‘자신의 꿈’을 흐리게 만드는 경향이 많다.

이 사회적 자아에 대한 편견이 본연의 자아, 그러니까 ‘자신의 꿈’을 흐리게 만드는 경향이 많다.

기억해라.

자신이 좋아했던 일과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자신이 좋아할 수 있는 일은 내 주변에 사람들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그 일을 하다보면 그 일과 관련된 사회에 편입되거나 
그 일에 대한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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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흐름

보통은 ‘맥락’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어떤 이들은 ‘맥락’이 있는 이야기를 하고,
어떤 이들은 ‘맥락’이 없는 이야기를 한다.

때로는 어떤 이들은 고의적으로 ‘맥락’을 끊기도 하고,
없던 ‘맥락’을 만들기도 한다.

엄밀하게 보면, 맥락을 쥐고 있는 사람이 이야기의 주도권을 갖은 사람이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 되어 어떤 결론과 메세지를 이 이야기에 참여했거나 이 이야기를 듣게 되는 이들에게 전달해야 하는지를 아주 명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목적을 갖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거나 이야기에 참여하게 되는 경우 ‘말’자체를 즐기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이들이 비율적으로 항상 높게 나타난다.

때문에 ‘맥락’을 짚는 일, 그리고 그 ‘맥락’속에서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이 ‘맥락’을 끌고 가야하는지를 명확하게 아는 이들은 위험할 정도로 논리적이고, 놀라울 만큼 감정의 호소도 잘한다.

‘맥락’을 끊어 버리는 일도 사실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데, 사람들이 그것을 잘 못한다.

어제는 6주기 세월호 참사일이였다.

아쉽고 애뜻하고 슬픈 일이다.

사실 그시절 나도 5년간 진행하던 사업에 문제가 생겨서 잠못이루던 시절이라 한참을 밤을 새가면서 세월호의 진행과정을 팽목항에 사람들과 같이 TV로 접했다.

그 시절 TV는 예능프로그램도 해서는 안되는 ‘국가적 애도’기간이었다.

공중파 3사는 경쟁하듯이 실시간으로 팽목항의 상황을 전파했고, 뉴스 이외의 프로그램은 하나도 없었다.

그 시절 나는 무척이나 궁금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시간으로 어떻게 돌아갈 수 있을까?

어떤 시점 부터 TV는 사람들에게 다른 세상의 모습을 점잖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자연 다큐멘터리와 동물 다큐멘터리 같은 프로그램으로, 하지만 절대 맥락을 끊지는 않았다.

그러더니 점점 그 관점은 사람을 향하고, 사람들 사이에 작은 웃음으로, 그 웃음소리는 점점 커지더라.

예능프로그램도 인트로에서 ‘국가적 애도’에 따른 위로를 덧붙여서 작은 웃음에서 점점 큰 웃음으로 이어나갔다.

어느새 맥락이 끊어졌다.

사람들 간의 소통에서 단 3초 만에 아주 짧게 끝나는 ‘첫인상’과 같은 소통도 있고, 10년 이상 걸리는 아주아주 긴 소통도 있다.

이 맥락을 어떻게 디자인하고 끌고가는가?하는 부분은 이 이야기를 이어가야 하는 이유가 있는 이들에게는 아주 중요하다.

절대 이유없는 무덤은 없다.

이야기가 흘러 어딜 향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는 어떤 이유가 있는지도 알 수 있고, 이 이야기의 방향을 바꾸는 방법이나 바뀔려는 순간 다시 낚아채 올 수 있는 기술도 갖고 있을 것이다.

이 수싸움에 너무 오랜시간 노출 되었었나보다.
사실 내가 요즘 좀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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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에 대해서

“왜 나라를 사랑해야 합니까?”

라는 질문을 던져 보자
일반적인 사람들은 어떻게든 대답을 하려고 할 것이다.
그 말이 올바른 말이든 다른 말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왜냐하면, 나라를 사랑해야한다고 배웠으니까

그런데 어떤이들은 ‘왜 나라를 사랑해야하냐?’는 질문에 황당해 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할 것이다.
마치 매국노나 친일파 등과 같이 격렬한 반응을 보이며 이 질문을 한 질문자에게 비난과 조롱을 하려할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나라를 맹목적으로 사랑해야 하는 척을 하는 사회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무지는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 땅에 태어나서 이 땅에서 죽어갈 사람이고,
이미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 땅에서 태어나고 이 땅에서 죽어간 이들이 이만큼 일궈놓은 곳이기도 하고,
내가 죽은 후에도 나의 자손들이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어갈 곳이기 때문에 최소한 나만큼은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하지 않겠는가?

다른 나라에 가서도 존중이나 존경받지는 못하더라도
무시나 차별받지 않고, 근본인 있는 인간으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나를 대표하는 곳. 그곳이 나의 나라이고 나에 대한민국이였다.

어떤 이가 물었다.
‘대한민국 사람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말을 들었을 떄 어떤 느낌이 드냐?’고,
나의 대답은 자부심이었다.

‘나’라는 일개인은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에 대한민국은 그 모든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보듬어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대한민국도 그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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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킹을 당했습니다.

대충 복구는 했습니다만, 처음 당해보는 해킹이라 어의가 없네요.

관심 갖어주시는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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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툼의 발생

다툼은

인간 개개인의 ‘자유의지’와 ‘자유의지’가 상충되면서 발생된다.

 

우리가 도시가 아닌 시골에 한적한 공간을 바라보고 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화로움’을 느낀다.

 

이는 평화를 다툼이 없는 상태로 인지하기 때문이다.

내 맘껏, 내 멋대로 해도 누가 뭐라 하지 못하는 공간의 확보가 소위 ‘평화’를 느끼게 되는 순간이 된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들의 편리함의 추구하기 위해

특정공간에 모여서 생활을 시작하고,

그 밀접도가 높아지면서 사람들은 저마다 추구할 수 있는 ‘자유의지’에 대한 제약 혹은 제한이 생기게 된다.

그나마 ‘자유의지’를 양심에 따라 자율에 따른 의식적으로 제한하는 경우에는 문제가 덜하지만,

성문화된 규약, 조례, 법률, 법 등에 의거하여 ‘자유의지’를 제한하게 되는 경우 ,

자신의 내부에서 갈등이 생기고, 이 갈등은 스트레스가 된다.

 

‘자유의지’와 ‘자유의지’가 상충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자유의지가 있는자와 자유의지를 갖을 수 없는 자로 사회적 계층구조를 만들던가,

둘 혹은 상충이 생기는 다수의 사람 모두가 자유의지를 갖을 수 없는 상태로 생활을 하면 된다.

하지만, 자유의지를 갖을 수 없는 상태는 상상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방식의 사고는 위험하다.

상대방의 ‘자유의지’에 대한 존중은 필요하다.

 

‘자유의지’는 인간으로 갖을 수 있는 권리이다.

하지만 공동체 사회에서는 타인이 ‘자유의지’를 추구할 수 있는 대한 권리를 존중해 주어야 하는 의무도 발생하는 것이라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것을 ‘인지상정’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가 한 민족이라고 표현하던 유사 ‘자유의지’를 갖은 사람들(동일 문화권의 사람들)과는 다른 문화를 추구하던 사람들과의

다툼에 대한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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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꿈을 만들 수 없는데, 꿈은 기술을 만들 수 있다.

내가 올 상반기에 여러가지 교육을 받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기술’에 대한 이야기 하려고 한다.

 

난 관심분야가 많다 보니 기술도 참 다양하게 많이 있다.

어떤 생각이 있어서 기술을 찾게 되고, 배우게 되고, 익숙하게 되고…

 

그동안 ‘나’라는 사람이 생활했던 방식이다.

요즘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있는데, 이곳에 친구들은 기술만 쫓는다.

 

사실 이곳에 사람들 나이에 나는 겁나 잘나갔었다.

최소한 경제적으로는…

내 과거와 그들의 현재를 오버랩 시키는 것은 바른 방법은 아니지만,

과거에 내게는 있었는데, 현재의 이들에게 없는 것이 있더라

 

 

 

꿈…

 

 

 

 

이들에게는 원래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갖을 수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는지?는 잘 모르겠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기술학원에 와서 기술에 대한 관심보다는 자신의 핸드폰을 들여다 보고 혼자서들 심각하다.

 

내가 늘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밥을 먹으려고 해도 누군가는 벼를 길러야 하고, 누군가는 냄비도 만들고, 연료로 쓸 수 있는 것도 만드는 누군가도 있어야 한다.

 

 

여하튼,

기술은 숙련될 뿐이지 그것이 꿈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꿈이 있다면 중년에 접어든 이 나이에도 얼마든지 ‘기술’을 갈 구 할 수 있는 것이다.

 

기술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숙련을 원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냥 이정도 기술이면 취업을 하겠다 싶은가보다.

에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