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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제의 시작은 분배의 형평성에 있다.

부족이 사냥을 나선다.
운이 좋게 아주 덩치가 좋은 소 한마리를 잡게 된 이 부족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소는 머리에서 꼬리까지 동일한 모양을 가지고 있는 부위가 전혀 없다. 게다가 어떤이는 앞다리를 원하고 어떤이는 가죽을 원하는 등 기호가 다 다를 수도 있고, 불을 다룰 줄 아는 부족이었다면 기름진 갈비살은 거절하기 힘든 유혹이 될 것이다.

다행히 이 부족의 사람들은 족장에게 호의적이어서 족장의 주장대로 분배가 이루어진다고 하면 이 부족은 다른 부족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한끼 식사를 마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죽은 족장의 배려로 누군가에게 전해졌을 것이고 이 배려를 받게된 부족원에게 다른 부족원들이 박수와 격려를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이는 어디까지나 이데아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족장에게 소위 ‘카리스마’가 없다면, 족장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들이 있기 마련이고 이런 자들은 호시탐탐 족장의 결정에 불만을 토로하게 되어 있다.

올초 부터 집필중인 ‘보스의 품격’이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을 집필하다보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참 빤한 이야기 처럼 느껴지곤 한다.

사실 모든 다툼의 근본적인 이유는 분배의 형평성에 논리에서 시작된다. 사실 무엇인가를 나눔에 있어서 완벽하게 둘로 나눈다거나 나머지가 없도록 하는 것은 수리적인(수학적인) 표현의 방식외에는 실제 생활에서는 존재하기가 힘들다.

때문에 사람들이 돈을 선호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0,000원을 3명이서 나눠야 하는 때에는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어떤이는 3,333원씩 나누자고 할 것이고, 어떤이는 333원이 있으나 없으나 매한가지라는 의미로 3:3:4로 나누자고 할 것이다.

분배의 방식부터 이견이 생기고 이는 다툼이 된다는 의미다.

이 다음의 이야기들은 굳이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다 아는 이야기다. “내가 옳네~”라는 주장으로 시작되는 말들은 자신의 자존감을 지켜내기 위해서 상대방을 헐뜻는 구조로 변경되고, 감정이 격해지면 물리적인 충돌을 피하기 어렵다.

다 아는 그런 파국의 상황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는 분명 중재자가 생기기 마련인데, 내가 아는 어떤 분은 본인이 다른 사람들도 그 사람이 중재자임을 알고 있고, 본인도 본인의 역할이 중재자임을 알고 있지만 절대 중재를 하시지 않는다.

그냥 내버려 둬도 결론이 나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내가 굳이 관여를 한다고 결론이 안나는 이야기면 나중에 원망을 듣는게 싫다는게 이 분의 주지이다.

어떻게 보면 되게 합리적인데 어떻게 보면 되게 이기적인 논리다.

때문에 이 분의 주변에는 상처입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게 감정적이든, 정신적이든, 경제적이든…

형평성이라는 것은 사실 굉장히 어렵다.

때문에 조금 균형이 안 맞는 것에도 불만이 생기지 않도록 만드는 기술이 필요한데,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는 이것을 ‘카리스마’라고 한다.

인간으로 다른 인간들을 지배할 수 없다면, 초월적인 어떤 능력을 갖은 어떤 것으로 부터 자신에게 그 권능을 제공 받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약간 치우친 형평 정도는 얼마든지 무마시킬 수 있다.

사회가 현대화 되고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주장하는 바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면 합리적인 의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세상을 살다보니 사람들은 더 정교한 형평을 요구하게 되었고, 그 형평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순간 위에서 말한 전쟁이 다시 시작되게 되는 것이다.

문제의 인식도 형평에 맞지 않는다이고, 문제의 해결도 이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당연하다라는 인식이다. 우리는 이 과정을 ‘합의’라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결국 인간의 이야기들은 항상 같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우리는 이것을 ‘자연’이라고 말하고, 이런 상황을 ‘자연스럽다’라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결국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시공간의 세계에서 완벽한 분배라는 있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도자들이 자신은 기존의 사람보다 더 형평을 맞출 수 있다고 주장을 하고 사람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를 추대해 보지만 결과가 역시나로 끝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어짜피 형평에 정확하게 맞출 수 없다면 차라리 중재라도 잘 해서 주변에 상처입은 사람들이 덜 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한 시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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