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마켓터

자본주의의 꽃은 졌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시장에 대한 인식이다.

일반적으로 ‘#시장’으로 알고 있는 ‘#재화시장’이 존재를 한다.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들이 화폐적인 가치로 그 각각의 가치를 ‘거래’하는 곳을 말한다.

‘재화시장’을 돌리기 위해서는 이 재화를 생산할 수 있는 노동력에 대한 시장도 존재를 한다. 우리는 이것을 ‘#노동시장’이라고 말한다. 노동시장의 공급자들은 노동강도와 그에 맞는 급여를 제시하고, 노동시장의 수요자들은 이 시장에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지능적 노동과 시간을 제공하고 ‘재화시장’과 같이 화폐적인 가치로 ‘거래’를 한다.

이 재화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공장이나 기계 등 기본적으로 많은 준비가 필요했는데, 그 준비를 하기 위해서 ‘#자본시장’이라는 것도 존재를 한다. 아직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돈을 벌 수 있다는 가정하에 돈을 넣고(투자) 지분을 확보한 다음, 실제로 돈을 벌게 되면 나누어 갖자는 ‘거래’를 하는 시장이다.

혹자는 ‘자본주의의 꽃’을 두고 ‘광고’라고 말하는 견해도 있긴하지만, ‘주식’으로 보는 견해가 더 옳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의 상대적 개념인 공산주의에서도 광고는 존재를 하지만 ‘주식’이나 잉여 수익에 대한 배분은 존재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이 글은 ‘자본시장’에 대한 글이다.

최근 우리나라 정부의 정책과 시장환경에 대한 질의를 해왔다.
현 정부가 시장을 통제할 수 있는가를 묻는 질문이었다.

나는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나 시장환경이 정부의 통제를 받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정부에 의해 사장통제가 가능하려면 후진국이나 개도국인 경우나 가능하지 않겠는가?” 라고 말을 시작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는 정부에서 통제(Control)를 할 수있을 없을 정도로 커졌고, 그 형식 또한 다양해졌다. 여기서 말하는 경제 규모를 시장의 크기나 시장의 종류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사실 이 말에 책임은 질 수 없었다. 왜냐하면 현 정부가 시장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영향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크던, 작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부에서 시장개입을 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 시장 질서가 만들어지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반면 정부의 시장 개입은 ‘법’, ‘법률’, ‘령’으로 지체없이 진행되고, 이런 것들은 외곡된 시장행태와 정보를 만들게 된다.

사재기를 만들게도 하고, 과소비를 부추길 수도 있으며 소비위축을 시키기도 한다.

특히 요즘 시절이 코로나로 인해 대면 영업이 안되고 소비 심리도 위축된 시절이라 기존의 방식으로는 예상이나 예측에 많은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약처방과 같은 임시방편들이 쏟아지고 있어 올바른 판단들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자본시장’에서 소모전을 계속하고 있다.

일반적인 경우 수요의 우하향과 공급의 우상향의 예측이 어느정도 가능했다. 그 이유는 기본 조건들의 변동에 대한 예측 배제가 있었고(고정), 생활양상이 전날, 전주, 전달, 전분기, 전년에 비해 다르지 않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에 그랬다.

내가 ‘자본시장’을 소모전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 시장에 목표는 ‘ZERO SUM’이기 때문에 그렇다. 참 재미있는 말인게 “버는 사람이 있으면 잃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이 왜 재미 있냐하면, 일반적으로 시장은 버는 사람이 있으면 쓰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쓰는 사람은 없고 잃는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에 대한 평가가 ‘투전판’인것 처럼 외곡된지 이미 오래다. 가치에 대한 평가와 예측에 의해 시장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알고 있는 어떤 형님이 단타성 매매로 적지 않은 수익을 올리고 있었는데, 이 형님은 직접 개발한 뉴스의 FEED를 활용한 매도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투자자들은 알지 못하겠지만, 전문적으로 자금을 운영하는 투자자 혹은 회사에서는 그들의 철학을 반영시킨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 프로그램들 서로 싸움을 하는 것 같이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이들은 이 시장에 승자를 양산해 왔다. 그럼 이 시장에 ZERO SUM을 위해 희생되어진 이들은 누구? 상승장에서는 이 프로그램의 매수 포인트 보다 조금 늦게 매수를 진행하고, 매도 포인트보다 조금 빨리 매도를 하는 하락장에서는 그 반대로 진행을 하고 있는 사람들… 차트만 보고 있으면 흐름을 알 수 없다.

게다가 지금처럼 큰 변수가 시장의 환경을 좌우할 수 있는 시점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 진흙탕 싸움이 한동안은 지속될 수 있겠지만, 어떤 시점이 되면 이 시장은 존재만 할 뿐, 그 기능이 정상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이 어떤 물건을 살 때, 꼭 필요해서 사기 보다는 구매에 따른 ‘기대심리’가 작용을 한다.

여자가 머리삔을 산다. 머리삔이 아무리 단순하게 디자인 된 실삔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그 삔을 어떻게 꽂고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서 자신을 더 돋보이게도 할 수 있고, 흘러내리는 머리를 고정시켜 다른 일을 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심리가 분명 존재를 한다.

자본시장에서도 마찬가지의 기대심리가 존재를 한다. 주식과 관련된 기대 심리 외에도 그냥 자금을 놓는 경우도 있다. 돈을 빌려준다는 것이다. 아~ 이 사람은 안되겠지만, 저 회사는 내 돈을 기일에 맞춰 돌려줄꺼야. 저정도의 이자율은 저회사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 저 회사 정도의 영업력(체력)이면 이정도 돈이 들어갔을 때 충분히 목표하는 수익을 얻어낼 수 있어! 라고 생각하면서 돈을 놓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당연히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상대가 사람이 아니고 회사라서 그렇다. 이 막연한 기대가 사실은 굉장히 위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법인이나 개인이나 차이가 별로 없다. 법률적 책임도 별로 다르지 않고, 오히려 법인은 빠져나갈 구멍도 많은데 사람들이 법인을 더 선호한다. 그 이유야 자금운영의 투명성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외감법인이 아닌 경우 자금 운영에 대한 자료를 제공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자료를 이해하거나 신뢰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

결국 이 시점에 이 사회의 문제들은 하나둘씩 붉어져 나올 수 밖에 없다.

이런 시절에 뭔가를 시작하려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돈을 대어보려는 사람들, 그걸 중간에서 핸들링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관리/관찰해하는 사람들…

미안하지만 예측이 안된다. 너무 많은 불확실성이 자본주의의 꽃을 지게 만들었다.

현재 파도가 몰아치고 강풍이 불어닥치는 망망대해를 통해 무역을 하겠다고 발벗고 나서는 배에 투자할 사람은 거의 없다. 거의가 아니고 있으면 이상한 것이다.

지금은 무엇인가를 해야할 때가 아니고, 상황을 주시하면서 관망해도 되는 타이밍이다.

Categories
마켓터

비 상식적인 시대

20평짜리 아파트가 7억이 넘고,
한끼 식사가 평균 8천원에 다다르는데
사회는 코로나 때문에 멈춰버린
비 상식적인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몰상식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한달 급여로 300만원을 번다고 치자.
나이도 20대 후반이라고 치자.

일단 이런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기 쉽지 않다.

엄밀하게 이런 사람이 존재하기 쉽지 않은 이유는 일단 20대 후반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뿐더러, 급여를 300만원이나 주는 회사도 그리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급여를 300만원도 안주는게 말이 되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외형적으로는 연봉 3600만원 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로 회사가 계약하는 금액은 3800~4000만원에 다다르는 경우다.

뭐 다 그냥 그렇다고 치자.

이 사람은 하루에 10만원 벌이를 한다.
생각해보면 참 작은 돈이고, 어떻게 보면 작지 않은 돈일 수도 있다.

이 사람이 할 3깨 매식을 한다고 치자.
아침에는 편의점 빵쪼가리랑 우유한잔 = 4,000원,
점심에는 회사근처 식당에서 국밥한그릇 = 8,000원,
저녁에는 매일은 아니지만 최소 일주일에 3회정도 친구들을 만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소주도 한잔 한다고 치자 = 15,000원
게다가 매일 담배도 한갑정도 핀다고 치자 = 4,500원
가끔 커피도 사마신다 = 4,000원

일단 먹고 마시는데만 하루 일당에 45%를 할애하게 된다.

휴대폰 요금은 한달에 5만원 쓰고 있고, 한달에 옷은 한 10만원어치씩 감가가 일어나고 있으며, 현재 살고 있는 주거에도 40만원이 들어간다.

단순하게 의식주에만 200만원 이상이 들어가는 샘이다.

한달에 100만원씩 저축을 한다고 쳤을 때 10년을 모으면 1억 2천만원… 20대 후반 부터 연봉이 오르는 것을 감안해서 생각을 해도 정년까지 자가 주택을 사는 것은 비상식적인 것이다.

비정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포함시키지 않은 샘이고, 게다가 여기 차까지 굴린다면 아무런 답이 나오지 않는다.

자본주의 이념을 공유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가격은 시장 공급자와 수요자의 거래 균형에서 가격이 생성된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시장이라는 것에 정부가 개입을 하고 보이지 않는 손들이 개입을 하면서 시장을 교란시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측을 할 수 없는 경제상황은 비 상식적인 상황을 더 가중시키게 된다.

뭔가 뾰족하게 해결책이 제공될 수 있을 것 같겠지만, 실제로 현실과의 괴리가 너무 커서 해답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딜레마들이 생긴다.

그냥 막연하게 아무탈없이 다음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꼴의 단편적인 정책들이 쏟아져 나올 수 밖에 없는 꼴이다.

문제는 그 단편적인 정책들이 코로나 때문에 멈춰버린 이 시점에 나온다는 점이다.
이것은 너무 위험하다.

시장이 제 기능을 온전히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데, 뭔가 대안을 주는 것 처럼 사람들은 생각을 하고 시장은 그에 반응을 한다.

당장 마실 물도 없는 상황에 자생력을 잃어버린 시장에 마중이라고 치고, 의미없이 퍼부어 없애는 꼴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정치는 우리 사회를 올바르게 발전시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 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정치는 우리사회가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결정하는 일을 한다.

그냥 돈을 쓰기 위해 모인사람들이 정치인들이다. 어짜피 써서 없어질 것 나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고 유도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그런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시대가 변해서 과거의 X세대들이 중년이 되었지만, 그들이 이 사회의 허리를 맡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X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 구조의 문제 때문에 그렇다.

사회가 진화하면서 크고 작은 변곡점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사회는 거의 완벽하게 자본주의 체제로 들어섰지만, 사회의 구성원들 중에 완벽한 자본주의 체제가 어떤 상태인지를 이해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이것이 이 비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게 된 가장 큰 문제다.

흔히 자본주이라고 하면, 돈, 물질만능, 사유재산인정 정도만 이해하고 있을 텐데,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말이기 때문이고, 그렇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사회주의자들이 기존의 경제 이념에 모순됨을 지적하기 위해
1) 사유재산
2) 모든 재화와 서비스에 가격이 존재
3) 이윤획득을 위해 상품의 생산과 서비스의 제공이 이루어 짐
4) 노동력이 화폐가치로 평가 됨
5) 거시경제적 시각으로 볼 때 상품의 생산이 무계획적으로 이루어짐

등을 꼬집어 말하며, 그간의 경제 이념에 문제들을 부각시키면서 그 문제 많은 “경제이념”에 대해 “자본주의(Capitalism)”이라는 명칭을 붙여놨다.

후에 경제학자들이 자본주의 이념에 애덤 스미스와 같은 경제 학자들이 시장경제라는 말을 가져다 붙이긴 했지만, 확실한 것은 자본주의라는 말이 그리 명확한 정의가 있는 말은 아니다.

특히 2차 산업혁명 뒤에 가장 큰 이슈였던, 미성년자들의 노동을 ‘착취’라는 선정적인 단어로 과격하게 표현하며 사회를 이루는 계급을 ‘브루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나누면서 그들만의 새로운 경제 이념을 확산시켰고 그것이 바로 ‘공산주의(Communism)’였다.

무조건 공산주의를 나쁘게만 보도록 교육을 받아온 나같은 사람들에게 요즘 세상은 비상식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느껴질 수 밖에 없다.

그동안 ‘중산층’이라는 말로 현혹하여 스스로가 무산자(스스로의 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임을 인식하지 못하게 한것은 아닌가? 라는 것이다.

내 것을 추구하려고 해도 추구할 수 없다면, 그것은 과연 내 것을 갖을 수 있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내 것을 갖을 수 없는 것이 맞을까?

내 것은 아니지만, 내가 평생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면 그것은 내것일까? 내것이 아닐까?

내 것이 아니지만, 내가 사용할 수 있다면 내가 애착을 갖을 수 있을까? 아니면 그냥 되는 대로 사용하다가 마는 것이 맞을까?

어쩌면 이놈에 코로나 때문에 나는 자본주의의 끝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부분 긴 회의 끝에 결국은 자본주의가 모두를 위해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애매한 결론이 나온다.
결론이 자본주의의 시장경제 논리가 우리의 삶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 애매한 비 상식적인 시대를 오늘도 살아내야 한다.

Categories
마켓터

돈에 의해 길들여 지는 사람들

사람들이 환경의 영향을 받고 생존하기 위해 그 환경을 극복해 간다는 대전제를 두고 오랫동안 시뮬레이션을 했던 프로젝트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사람은 최소한의 생존 조건만 갖춰지고 나면 안주하려는 습성이 있다는 것으로 점점 결론의 가닥이 잡히고 있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은 그 상황에 안주하고 나아가려(발전하려)하지는 않게 되는 걸까?

10년이 넘게 진행되어온 프로젝트가 이렇게 마무리되게 될 것 같아서 너무 아쉽기 그지 없다.

Categories
마켓터

systema

이 주제의 글을 언젠가는 쓰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사실 쉽게 쓰지 못했다. 왜냐하면, 올해까지 15년간 systema를 연구하면서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권세를 위해 이 격투 체계에 대한 숱한 거짓말들을 뱉어왔기 때문이다.

나도 그들과 같이 폄하될까가 걱정되어 몸소 보여주지 않는다면 구태여 systema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게 된 까닭은 뭔가 큰 깨닭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시스테마(#Systema(러시아어: #Система))는 러시아 특수부대인 스페츠나츠가 사용하는 군용 격투 체계이다. 나는 Mikhail Rybko 계열의 systema를 지난 15년간(2005년 입문) 수련해 왔다.

2005년 즈음, 나는 #극진공수도 에 무척 심취해 있었는데,
극진공수도의 모티프가 ‘#일격’인데도 불구하고 아무리 수련을 하고 쿠미테를 해봐도 한방에 나가 떨어지는 경험을 해보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우연하게 알게 된 시스테마의 영상에는 큰 동작도 아닌데 상대방을 다운시키는 모습이 있었다.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간의 강함이 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시스테마(#Systema(러시아어: #Система))를 일종의 무술이나 OO도와 같은 승급, 승단체계(Belt System)이 있는 것 처럼 한국에 소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시스테마는 격투체계이지 그 자체에 어떤 ‘본(태권도에 태극1장 과 같은 ‘품새’와 같은 것, 필자가 검도를 오랜기간 수련했던 사람이라서 ‘본’이라는 말이 더 편해서 사용한 것임)이라는 것이 별도로 제공되지 않는다.

인체를 이해하고, 운동의 방법을 이해하고, 각 신체 부분의 연관성을 이해해서 이것들을 복합적으로 활용할 때 비로서 시스테마의 운동성이 발휘된다.

#시스테마(#Systema(러시아어: #Система))가 현존하는 다른 타격 위주의 무술들(태권도, 가라데, 무에타이, 복싱 등)과 가장 차이가 나는 점이 있다면, 타격의 방식에 있어서 다른 무술들은 직선의 공격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본인의 신체적 한계(팔의 길이나 다리의 길이)를 극복하고 상대방과의 격투 거리를 확보해 나아가는데 반해, 시스테마의 경우에는 직선보다는 신체의 관절들을 축으로 하여 원 운동 처럼 회전하게 하는 공격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른 스텝을 활용한 기술도 딱히 없다.

이점을 다시 생각해 보면 공격형 격투체계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기 쉽고, 이것을 부인하기도 참 애매하다.

하나 확실한 것은 시스테마의 핵심 이론인 ‘평정심’은 모든 무도에서 추구하는 바와 동일하다는 것인데, 다른 여타 무도에서는 무를 행하기 전 그 움직임에 폭발력과 상대의 타격에 따른 부상을 방지하고자 근육의 긴장과 수축을 통해 강인함을 추구하지만 시스테마의 경우 오히려 힘을 빼서 이 ‘평정심’이 지속되도록 수련을 한다.

움직임에 자유도를 높이기 위해 “정신 “또는 “심리적 상태”가 분노, 자극, 두려움, 자기 연민, 망상, 자존심이 없이 평온해야 한다는 것을 목표로 함도 이와 같은 이유이다.

마케팅을 하다보면 그 효과나 반응에 대한 정량적, 정성적인 자료에 반영을 위해 강박적으로 적극적이고, 자극적이며, 직설적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갖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들이 원하는 대로 해줘도 그 성과가 안나온다.

왜냐하면 시장을 형성하는 과정이라는 것이 갑자기 없던 시장이 ‘뿅!’하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주제를 가지고 있는 ‘관절’에서 부터 이어져 나와서 유사 주제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스테마에서 관절을 중심으로 회전시키는 타격기와 아주 유사하다.

어떤 이가 가방이라는 주제에서 이런 저런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면 이런 관심 뒤에도 ‘가방’이라는 주제와 연관이 있어야 하고, 저런 관심 뒤에도 ‘가방’이라는 주제와 연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손이 움직이기 위해서 손목관절도 움직여야 하고, 팔꿈치 관절도 움직여야 하며, 어깨관절도 움직여야 하고, 흉추관절과 더 나아가서는 척추가 다 움직여서 고관절과 무릎, 발목과 발가락에 있는 모든 관절이 마치 하나 처럼 움직여야 하는데 다른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은 손만 움직인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세상이 그런 것 같다.

조바심을 내고, 조급하게 생각하면 변화를 감지하지도 못하고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다.

결국 모든 격투의 승패는 순간의 움직임이 좌우하지만, 그 순간의 움직임에도 어떤 한계들이 명확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깨닭아야 한다.
그 한계를 정확하게 알게 되는 순간! 그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는 조급함을 버리고 평정심을 갖어야 한다는 깨닭음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시스테마(#Systema(러시아어: #Система))에서 추구하듯 평정심이 있어야 움직임에 자유도를 갖을 수 있고, 얼마든지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고의 폭이 생겨날 수 있다.

Categories
마켓터

모든 문제의 시작은 분배의 형평성에 있다.

부족이 사냥을 나선다.
운이 좋게 아주 덩치가 좋은 소 한마리를 잡게 된 이 부족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소는 머리에서 꼬리까지 동일한 모양을 가지고 있는 부위가 전혀 없다. 게다가 어떤이는 앞다리를 원하고 어떤이는 가죽을 원하는 등 기호가 다 다를 수도 있고, 불을 다룰 줄 아는 부족이었다면 기름진 갈비살은 거절하기 힘든 유혹이 될 것이다.

다행히 이 부족의 사람들은 족장에게 호의적이어서 족장의 주장대로 분배가 이루어진다고 하면 이 부족은 다른 부족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한끼 식사를 마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죽은 족장의 배려로 누군가에게 전해졌을 것이고 이 배려를 받게된 부족원에게 다른 부족원들이 박수와 격려를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이는 어디까지나 이데아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족장에게 소위 ‘카리스마’가 없다면, 족장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들이 있기 마련이고 이런 자들은 호시탐탐 족장의 결정에 불만을 토로하게 되어 있다.

올초 부터 집필중인 ‘보스의 품격’이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을 집필하다보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참 빤한 이야기 처럼 느껴지곤 한다.

사실 모든 다툼의 근본적인 이유는 분배의 형평성에 논리에서 시작된다. 사실 무엇인가를 나눔에 있어서 완벽하게 둘로 나눈다거나 나머지가 없도록 하는 것은 수리적인(수학적인) 표현의 방식외에는 실제 생활에서는 존재하기가 힘들다.

때문에 사람들이 돈을 선호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0,000원을 3명이서 나눠야 하는 때에는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어떤이는 3,333원씩 나누자고 할 것이고, 어떤이는 333원이 있으나 없으나 매한가지라는 의미로 3:3:4로 나누자고 할 것이다.

분배의 방식부터 이견이 생기고 이는 다툼이 된다는 의미다.

이 다음의 이야기들은 굳이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다 아는 이야기다. “내가 옳네~”라는 주장으로 시작되는 말들은 자신의 자존감을 지켜내기 위해서 상대방을 헐뜻는 구조로 변경되고, 감정이 격해지면 물리적인 충돌을 피하기 어렵다.

다 아는 그런 파국의 상황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는 분명 중재자가 생기기 마련인데, 내가 아는 어떤 분은 본인이 다른 사람들도 그 사람이 중재자임을 알고 있고, 본인도 본인의 역할이 중재자임을 알고 있지만 절대 중재를 하시지 않는다.

그냥 내버려 둬도 결론이 나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내가 굳이 관여를 한다고 결론이 안나는 이야기면 나중에 원망을 듣는게 싫다는게 이 분의 주지이다.

어떻게 보면 되게 합리적인데 어떻게 보면 되게 이기적인 논리다.

때문에 이 분의 주변에는 상처입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게 감정적이든, 정신적이든, 경제적이든…

형평성이라는 것은 사실 굉장히 어렵다.

때문에 조금 균형이 안 맞는 것에도 불만이 생기지 않도록 만드는 기술이 필요한데,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는 이것을 ‘카리스마’라고 한다.

인간으로 다른 인간들을 지배할 수 없다면, 초월적인 어떤 능력을 갖은 어떤 것으로 부터 자신에게 그 권능을 제공 받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약간 치우친 형평 정도는 얼마든지 무마시킬 수 있다.

사회가 현대화 되고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주장하는 바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면 합리적인 의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세상을 살다보니 사람들은 더 정교한 형평을 요구하게 되었고, 그 형평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순간 위에서 말한 전쟁이 다시 시작되게 되는 것이다.

문제의 인식도 형평에 맞지 않는다이고, 문제의 해결도 이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당연하다라는 인식이다. 우리는 이 과정을 ‘합의’라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결국 인간의 이야기들은 항상 같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우리는 이것을 ‘자연’이라고 말하고, 이런 상황을 ‘자연스럽다’라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결국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시공간의 세계에서 완벽한 분배라는 있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도자들이 자신은 기존의 사람보다 더 형평을 맞출 수 있다고 주장을 하고 사람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를 추대해 보지만 결과가 역시나로 끝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어짜피 형평에 정확하게 맞출 수 없다면 차라리 중재라도 잘 해서 주변에 상처입은 사람들이 덜 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한 시절인 것 같다.

Categories
마켓터

노동자들을 위한 나라는 행복할까?

봉건 왕조가 무너지고 세상은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진다.

자본가의 세상과 노동자의 세상

어찌보면 봉건사회에서 자본가의 세상으로의 이어짐은 아주 유사한 부분이 많이 있었고, 그간 봉건사회를 탈피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그 문제점을 ‘노동’이라는 범주에서 착취당하지 않고자 노력해왔었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이 두 범주의 사회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의 가치관을 고집하면서 적대적으로 살아가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우리는 흔히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름으로 이 두 사회를 구분하고 그 차이점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가 상대방의 이념보다 우월함을 강조하는 환경속에서 성장해 온 것이다.

6~70년대 대한민국은 식민의 과거와 민족상잔의 비극으로 말미암아 폐허가 된 상태에서 단지 배고프지 않으려고 열심히 해야하는 나라였다.


자본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식의 이데올로기를 무기로, 얼마든지 사람을 나쁘게도 만들 수 있었고, 공포를 느끼게도 할 수 있었으며 이것은 ‘통치’의 수단으로도 얼마든지 활용될 수 있었었다.


특이한 점은 자본주의의 상대 개념이 공산주의인데, 이 시절 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민주주의의 상대개념으로 공산주의를 활용했던 것 같다.


아마도 북한의 정치세력이 ‘공산당’이라는 당명을 활용했기 때문에 그런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여하튼 그렇게 6~70년대 잘 확보된 인프라를 바탕으로 80년대 초고속 성장을 하게 된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할 만큼 정말 눈부신 성장의 뒷면에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고, 모든 노동쟁의의 시초를 만든 ‘전태일’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전태일은1970년 11월 13일,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면서 온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소사하였다.

물론 그 이후에도 노동환경이 완전히 개선되는 것은 아니었다.
또 다른 한명이 목숨을 잃고 나면 아주 조금씩 나아질 뿐이었지…

그렇게 끝이 없이 성장을 할 것 같던 대한민국의 성장곡선은 90년대에 접어 들면서 급격히 꺾이게 된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는 경고말이 알려주듯이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에 이룩한 성공에 도취되어 무리한 확장으로 도산하게 되는 많은 기업들이 발생하게 되었고, 결국 97년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 이르게 된다.

그 이후 사회에는 많은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IMF의 원조 조건에 따라 고용시장에 자유경쟁체제가 도입되어, 많은 노동자가 실업자가 되었고 평생고용제와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없어지고 대신 평생직업이란 개념이 자리잡게 된다.

급여도 연공서열을 따지는 호봉제 대신 능력에 따른 연봉제로 바뀌었고, 정리해고가 자유로울 수 있도록 정규직 근로자의 비율은 줄어 들고 비정규직 근로자가 크게 늘어나게 되었다.

어찌보면 비정규직의 양산은 생존을 위한 전략이다.

2020년 현재는 어떠한가?

COVID-19의 세계적 대 유행이 계속되어 자본주의는 그 기능을 상실하고 있고, 부존자원이 부족해서 수출을 통해 먹고 살 수 밖에 없는 이 나라에 큰 위기가 계속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정자들도, 행정가들도 ‘노동자를 위한 나라’를 부르짓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기만 하다.

어제 대법원에서 ‘전교조’와 관련된 판결이 났고, 그 이후 “동지 여러분 우리 학교로 돌아갑시다.”라는 성명서 발표가 되는 순간 나는 겁이 났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의 교육을 스승이 아닌 노동자들에게 맡기게 되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결코 자본가에 대해 우호적일 수 없다.
계속해서 스스로를 착취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프레임에 갇어두고 ‘필사의 항쟁’을 통해 얻어내는 것이 마땅하다는 투쟁의 역사를 갈구해야 다른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고, 이 지지를 기반으로 다시 투쟁을 이어갈 수 있는 태생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위 ‘한국판 #뉴딜펀드’라고 불리는 #관치펀드 는 우리사회의 시장기능을 완벽하게 외곡시켜 되돌이킬 수 없는 불황으로 치닫게 할 수 있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작년에 출시된 ‘#필승코리아펀드‘는 삼성전자의 선방으로 50%가 넘는 좋은 수익율을 가져갈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판_뉴딜에는 시장성이나 성공요소가 불확실한 너무 많은 사업들이 산재해 있다.

게다가 이 뉴딜의 핵심에는 190만개 이상의 #일자리_창출 이 자리 잡고 있는데, #4차_산업혁명 을 염두해둔 한국판 뉴딜은 거의 모든 산업혁명이 그러했듯이 해당 부문의 사업이 성공할 때에 일자리 창출보다는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경향이 더 큰 것들이 대부분이다.

사업성도 없는 사업에 일자리도 만들어야 하고 게다가 현재 상황은 ‘노동자를 위한 나라’ 기조라 대부분의 일자리는 정규직 형태로 생기게 될 텐데, 너무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현 정권의 집권 초기 시장의 기능을 무시하고 강행된 ‘#최저임금’인상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은 커녕 그나마 있던 아르바이트 자리 마져 사라지게 만들었었다.

시장은 그런 곳이다.
누군가의 생각이나 의지대로 흘러가는 곳이 아닌
‘수요’와 ‘공급’이 명확하게 자신들의 잇속을 충분히 고려해서 타협과 합의를 이끌어 내는 곳이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소속회사 이외의 대상과의 대립은 고려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자본가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원래 돈은 이름도 없고, 갇어둘 수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아쉽게도 현재 사회에 자본가들이 없다면, 사업의 계속성을 담보할 수 없을만큼 위험요소들도 많이 있다.

우리가 흔히 베이비 붐머라고 표현하는 58년 개띠 분들이 올해로 63세가 되었다.
이것은 다른말로 은퇴를 마쳤다는 뜻이고, 시장에 자금이 넘치다는 말이다.

나는 최근 몇년간의 부동산 가격의 폭등을 베이비 붐머들의 노후 생활자금을 확보를 목적으로한 투자에서 기인한다고 추측해 왔다.

사회환경이 점점 예측 불가능한 상태로 가고 있는데, 가장 안전한 투자처는 부동자산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주 합리적인 생각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정부에서 생각하는 것 처럼 시장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고 앞으로도 정부가 희망하는 대로 시장은 움직이지 않을 것 같다.

과거 IMF 때는 터트릴 샴패인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소주한잔 쨍~ 할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나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노동자’이길 바란다.
그리고 나는 ‘노동자’인 당신이 ‘자본가’가 될 수 없어서 ‘노동자’가 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면 한다.

결국 인간의 역사는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그것을 굳이 부인하고자 했던 자들이 만들어 놓은 이상향이 ‘누구나 행복한 나라’ 즉, 유토피아 였고, 이것은 아주 오랜 시간동안 사회주의자들에 선전 문구였다.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말처럼
‘누구나 행복한 나라’는,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나라’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제대로 된 모든 보상을 충분하게 하는 자본가를 만나는 것이 어려운 것 처럼, 완벽한 노동력을 모두 제공하는 노동자가 존재하지도 않는다.

인간은 그마만큼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때문에 아쉽게도 완벽한 경쟁사회, 완전한 시장주의가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Categories
마켓터

Cliche

늘 이놈에 #상투적 이라는 말이 발목을 잡는다.
뭔가 새로운 것이 필요한데… 하다보면 상투적이다.

어디서 본 듯 하고, 어디서 들은 듯 한…

이미 직/간접적인 경험으로 알고 있는 그 다음 상황의 전개가 빤한 그런 것…

늘 존재하는 것들 중에 내가 알지 못하는 이유 때문에 나와 함께 하는 것들이 있을 수 있다.

늘 존재하는 것들 중에 내가 알지 못하는 이유 때문에 변절? 변화한 것들도 있게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 대한 조심을 기하기 위해 우리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보안을 신경쓰고 2중 3중의 보호방법을 강구하지만 완벽한 보안책은 없다.

이것이 내가 #블록체인 을 찬양하는 이유가 되었고, 앞으로의 일들을 어떻게 구가해야하는지 명확하게 알게된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클리세 인 것을 알면서도 계속 그렇게 실패하는 방법을 극복하는 방법만 모색을 한다.

늘 프락치는 존재해 왔다.
다만 #프락치 를 인식하지 못 함이 늘 실패로 이끈다.
어떤 이들은 프락치가 외부로 정보를 흘리는 사람만 있는 것으로 인식하지만, 내부에서 부정적인 말을 하고, 불안한 기운을 만드는 것도 #프락치 다.

내가 새로운 #블록체인 기법에 대한 특허를 출원함에 있어서 망설이지 않았던 이유이고, 그 실패로 접근하는 클리세를 명확하게 알았기 때문이다.

깊게 생각하고 빠르게 행동해라.
깊은 생각을 위해서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다음, 다음, 다음 상황에 대한 시퀀스를 명확하게 가지고 가면 된다.

어떤 이는 Plan B(Backup plan)를 두고 A.B.C.D.E…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어떤 순차적인 2번째 계획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봤는데,
숙고했다면, 첫번째 계획이 틀어지면 안되는 것이다.

이 글이 이렇게 밖에 씌여질 수 없어서 너무 아쉽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