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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생각)은 ‘지적유희’일 뿐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

우리가 말하는 생각한다는 활동.
우리가 표현하는 생각한다는 활동은 단순한 ‘지적유희’인가?

아침부터 칸트에 대한 책을 읽다 보니 갑자기 생각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우리가 하는 생각이라는 활동은 실제로는 실체하지 않는 활동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나의 내부에서는 생각이라는 활동이 계속되고 있겠지만, 이것이 표현되기 전까지 다른 이들에게 관찰되지 않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alpha-zone theory와 아주 유사하다.

우리는 상상을 통해 많은 경우의 수, 즉 가능성에 대한 추측을 한다. 지금 말한 가능성, 추측은 다 존재하지 않는 하지만 존재할 수도 있는 것을 말한다.

지금까지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존재할 수 도 있고, 논리적인 증명을 통해 이것이 ‘참’이 되었던 ‘거짓’이 되었던 간에 우리가 머릿속에서 진행되는 생각을 통한 논리적 증명을 실제 세상에서 시행함에 따라 다른 사람들에게 관찰되기 직전까지가 바로 ‘생각’ 이라는 것이고, 이것은 단순한 지적유희… 그러니까 ‘놀이’냐?에 대한 궁금함 이 생긴 것이다.

우리가 생각을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정말 많이 있지만, 그것은 실제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하지 않는 것은 그냥 놀이에 불과한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이 한 일들은 무턱대고 시작을 하거나 일단 저질러 놓고 보는 식의 일이 거의 없다.

일반적으로는 ‘통밥?’을 본다고 해서 건성으로 라도 계획을 세우고 전략을 세운다.

혼자하는 일이라면, 그 성패를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일의 진행 순서를 짠다던가 성공을 하게 된다면? 혹은 실패를 하게 된다면? 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여럿이 하는 일이라면, ‘A’는 무슨 일을 하고, ‘B’는 무슨 일을 맡아줘! 나는 무슨 일을 할테니… 이런식의 어떤 생각도 가능하다.

결국은 인간에게 ‘생각’이라는 것은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 그 가능성을 점쳐보고, 보다 성공이라는 요건에 가까울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의 방법이다.

이런 경우에는 단순한 유희로 치부하기는 다소 어렵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결론’이 난 경우고 ‘결론’이 나지 않는 어떤 형태의 생각들이 있다.

소위 무한 루프에 빠지는 생각들인데,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형태에 생각이다.

순차적인 순서의 복제가 가능한 어떤 상황들이 만들어 내는 오류인데, 이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에서도 발견되곤 한다.

어떤 조건의 값이 참이 나와야 종료가 되는 어떤 반복문에서 참이 나올 수 없는 조건을 수행하는 경우가 그렇다.

이게 처음에 한두번 정도의 도전까지는 재미가 있는데,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의 어떤 상황에 이르게 되면 지루해지고 권태로워지다가 결국은 포기하고 절망에 빠지게 된다.

뭐 아주 극단적인 사례이기도 하지만, 자살을 선택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의 어떤 순환에서 명확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계속 반복해서 나쁜 조건의 생각들만 지속적으로 진행하다보니 결국 포기하고 절망에 이르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다시 원점의 생각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생각의 형태가 문제의 각성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대부분의 생각의 시작은 어떤 문제의 인식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생각의 시작이 문제인식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모른다.

어떤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 중에 가장 손 쉬운 방식이 바로 생각인 것이다. 그 문제의 해결이 실제하기 위해서는 실제에서의 물리적인 노력이 필요하지만, 아직 실제하지 않았고, 그 해결을 위한 방법은 수백 수천 수만가지도 더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내 경험상 오랜시간 생각을 해서 아주 좋은 1가지의 경우를 선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적당한 시간에 생각된 여러가지 중 그나마 성공의 확률이 높다고 생각되는 것을 하나 선택해서 일단 실행해 보는 것이 가장 결과적으로 좋았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유희’로 변질 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생각만 하고 결론을 못짓는 경우다.

결론을 못짓는 다는 것은 무한루프에 빠졌다는 것이거나, ‘실행’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좋은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그게 ‘실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물론 모든 생각이 어떤 행동지침을 목표로 시작되지는 않는다.
어떤 생각은 ‘도덕적 잣대’를 만들기도 하고 ‘도덕과는 다른 지적 판단의 기준’을 만들기도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생각의 발로가 ‘문제인식’에서 부터 이기 때문이다.

난 단순하게 상상, ‘생각하는 힘’을 지적유희라 치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상을 하던 생각을 하던 공상을 하던 그것이 그것으로만 남아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한다.

실행을 하거나, 기록으로 남기는 노력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앞으로도 더 행복한 공상가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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