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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집값을 오르게 만들었나?

하루가 다르게 집값이 오르고만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

시장의 원리를 무시하는 위정자들이 또 실수를 하려고 한다.

무엇이 집값을 오르게 만들었나?

왜 집값은 오르는가?

왜 우리는 집을 사야만 하는가?

왜 우리는 집값에 집중을 하게 됐나? 에 대해 글을 남겨보고자 한다.

시장은 늘 같은 이론으로 귀결된다.

‘수요’와 ‘공급’법칙!!!

이 시장에서 우리는 공급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공급이 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수요가 계속 늘어날까?

실수요자도 수요이고 실수요자가 계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은 수요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수요자들을 노리는 투기꾼들의 수요도 분명 한 몫을 하고 있다.

사실 그들이 믿고 있는 것은 ‘기회’이다.

돈을 벌 수 있는 기회,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

주변에 오랫동안 영업을 하는 상점들이 많이 있어서 언제든 원할 때 충족시킬 수 있는 기회,

새벽에 아파서 병원을 찾을 수 있다는 기회 등

이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지역적 요건이 서울과 수도권에 많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최근 정부가 의사수를 늘리겠다는 발표를 했다.

한해에도 3000년명이 넘는 의사가 배출된다.

하지만, 정부는 OECD라는 잣대로 부족하다고 말을 한다.

정말 그럴까?

대부분의 의사들은 졸업 후에 의사가 되고 이후 1년의 전공의 과정과 4년의 수련의(경우에 따라서는 3년)을 겪은 후에 전문의가 된다.

전문의를 취득한 의사들이 자신의 전공분야로 봉직의나 개원의가 되는 것도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한 의사들은 전공과는 상관없이 레이저를 쏘기 위해 강남으로 간다.

우리나라 강남을 보면 대한민국은 피부병 환자들이 넘쳐나는 아주 불행한 도시다.

많고 많은 지역중에 왜 ‘강남’에 에스테틱들이 많이 있을까?

왜 그토록 많은 성형외과들은 ‘강남’에 밀집되어 있을까?

아주 옛날 옛적 압구정동에 배밭이 있던 시절에 대한 기억은 없으니 현대아파트가 생긴 이후 이야기 부터 하자면,

일단 강남에는 예전부터 학원들이 많이 있었고,

강남대로의 가장 큰 특징은 경부고속도로를 인접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수도권이나 일부 지방대학교의 통학차량들이 강남대로를 지나거나 승하차 시키는 장소였다.

다시 말해서 유동인구가 많은 동네일 수 밖에 없는 지리적 잇점이 있었다.

다시말해 그곳에 간판을 걸 수 있다면, 수많은 사람들에 눈도장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강남의 원주민은 이런 것을 반기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분당 신도시가 막 생겨나기 시작했을 때, 자녀를 대학에 보낸 많은 강남의 원주민들이 보다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을 위해 분당으로 이사를 갔다. 그때의 자녀들이 지금(2020년 현재) 40대 후반에서 50대가 되었다. 20년 전쯤 X세대로 불려지며, 전후 세대와 차별을 된 문화 패턴을 가지고 있던 그 사람들이 서울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오는 곳이 강남역 부근이거나 잠실에 신천역 부근이었다.

어쩌면 ‘강남 불패의 신화’는 이 시절의 부모세대와 X세대의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전설 일지도 모른다.

오래전 부터 강남에는 소위 고위 공무원들이 많이 살았다. 물론 지금은 대기업이 된 몇몇 기업의 사택부지들도 강남에 많았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강북보다 땅값이 쌌으니까!

공무원들이나 급여 생활자들이 생활을 한다는 것은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고정적인 급여가 보장되어 일정한 소비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런 좋은 시장을 두고 성공신화를 써 내려가기 시작하는 자영업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자영업자들은 세를 내던 상가의 터를 구입하고 구도심으로 불리는 종로나 여의도의 상가보다 더 크고 주차장이나 엘리베이터와 같은 편의를 위한 시설들을 확충시켰다.

이것도 사람들을 강남에 열광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불과 30년도 안된 이야기들이다.

조상 대대로 농사짓던 땅을 팔아 갑자기 부자가 된 ‘졸부’라는 말이 나온 시기 이기도 하다.

세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성공스토리를 뽐내고 인정받길 원한다.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그 시절에는 ‘강남’이 된 것이다.

서울 시내에서 30평대 아파트 가격이 최초로 1억을 돌파했던 그 지역도 강남이었고, 전국을 막론하고 서울시내 고등학교 중에 소위 SKY의 합격율이 가장 높은 지역도 강남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던게 유명 사립 고등학교들이 줄줄이 강남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서울은 평준화 지역이라 이 사립고등학교의 인근에만 살아도 그냥 명문고등학교로의 입학이 가능해졌고, 이 학교에 열정적인 선생님들이 저마다 자신의 학교의 명예를 걸고 훈육을 시켰다.

이것이 소위 ‘강남 8학군’이라 불리던 곳이다.

뿐만 아니라, 부모들은 자신의 세대보다 자녀들이 더 많은 교육을 받고 더 많은 기회를 얻는 것에 열정을 아끼지 않고 쏟아 부었다.

몇해 지나지 않아 SKY를 많이 보내는 유명 학원들과 연봉 10억이 넘는 스타강사들, 쪽집게 과외선생들이 강남에 진을 치고 열정이 넘치는 부모들의 아이들을 맞아주었고, 덕분에 학교에서 치뤄지는 시험의 성적이 평균 60점을 넘지 못하는데(과락)에도 불구하고 반 석차가 10등 이내에 들어가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곳이 강남이었다.

이상할 것도 없다. 지역의 전반적인 향학 분위기는 다른 어떤 지역에 비해 더 강하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하는 공부를 자신의 자녀들이 하지 못하면 위기감 마저 느끼게 되는 부모들로 인해 공교육 보다는 사교육에 더 많이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부모는 자녀를 위해 강남을 선호하게 되었고, 같은 이유로 그 자녀들이 자신들의 자녀들을 위해 또 강남을 선호하게 되는 이상한 상황이 세대를 넘어 반복되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조부모가 된 그 세대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자녀가 그만큼이라도 살 수 있는 이유를 자신들의 손주들에게도 제공해 주고자 하는 바램 때문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강남의 30평대 아파트를 10년 전부터 연봉 1억을 벌었다고 하더라도 강남에 자력으로 집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사는 사람들은 돈이 있고, 돈이 도는 곳으로 가야 비로소 돈을 벌 수 있고, 돈을 벌기 위해 그곳에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된다. 그래서 조그마한 김밥집을 하려고 하더라도 강남에 가게를 내야 돈을 번다는 신념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IMF 시절에도 강남의 집값은 다른 지역에 비해 안정적이고, 경제 규모는 지금보다 더 커질 것이고, 앞으로도 강남의 집값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전염병 처럼 그 주변으로 번져나갔다.

게다가 새로 생기는 아파트들이 분양가 상한제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 투기꾼들에게는 실수요자를 호구로 만들 수 있는 기가막힌 미끼가 되었다.

평당 1500만원이 넘는 35평 짜리 신축 아파트를 5억 대에 분양을 받는다고 하면, 이것은 거의 로또가 되는 것이다.

기존 거래가가 이미 1500만원 이상인 지역에 1500만원 대의 아파트가 올라간다는 것은 그만큼 프리미엄이 붙게되는 이유가 되고 프리미엄이 붙는 만큼 해당 지역에 거주 중인 실수요자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 기대 수요들을 노리고 있는 투기 세력은 이들을 놓치지 않는다.

실수요자들은 개인적으로 움직이지만, 이들을 노리고 있는 투기 세력들은 조직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모수의 힘이 큰 자들은 더 유리한 확률게임으로 분양권을 사들일 수 있다.

문제는 강남이 오르니, 주변도 오르게 되는 부분이다. 투기 세력들은 이 좋은 기회를 더 확장시키고 싶어한다. 강남에서 강남 3구(강남, 송파, 서초)로 확장시키고 이곳을 통해 자금을 확보한 사람들은 서울의 다른 지역이면서 주요 상권이 밀집되어 있는 마포, 용산, 성동(이른바 ‘마용성’)을 들 쑤시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그들의 작전은 적중했다.

“정말 이들에게 돈이 있어서 집을 구입할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지 않은가?

전세를 끼고 집을 산다는 이야기는 30년 전에도 있었던 이야기다. 다만 그 때는 전세기간이 만료되면 그 집에 들어가서 살 요량으로 집을 구매하려고 했던 것이고, 지금은 그냥 집을 사두지 않으면 절대 못 살것 같은 위기감이 집을 사도록 만든다.

오죽하면 집을 보지도 않고 매매를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겠는가?

집을 사고 싶어서 집을 사는게 아니라 집을 못사게 될 까봐 집을 사야하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최근 나는 ‘OO으로 산다는 것’과 ‘OO인 듯하게 산다는 것’에 대한 아주 진지한 고민을 해왔다.

다른 글을 통해 이 이야기도 하긴 하겠지만, 지금 집을 산 사람들은 ‘집 주인으로 산다’라기 보다는 ‘집주인인 듯 하게 산다’라고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집을 구매하면서 최소 집 가격의 50%이상은 융자를 받아 집을 구매했기 때문이다.

집을 안 가지고 있다보면, 대항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바로 공포의 시작이다.

집이 없는 상태로 세를 살다보면 집 주인은 언제든지 집값을 올려 받으려고 할 것이고, 그 요청에 응하지 못하면 전세난민, 월세난민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강남? 강남이 안되면 서울? 서울이 안되면, 분당/일산/김포 신도시? 거기도 안되면 조금더 수도권? 거기도 안되면… 안되면… 안되는데…

수도권을 벗어나면 출퇴근이 어렵고, 그 지역에서 지금과 같은 수준의 급여나 복지나 정년을 보장해 줄 수 있는 회사에 취업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의 교육은?

결국은 ‘서울’이 답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영혼까지 탈탈 털어서 집을 사라!’

하지만, 단편적으로 집값이 많이 올랐다는 것만 보지말고 이전 정부가 집값을 올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이유를 알아야만 한다.

집 값이 떨어지면 안되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1. 금융기관의 부실
  2. 국가 신용도 하락
  3. 국채의 가격 상승
  4. 국가 부도 위기

뭐 대충 IMF 때와 다르지 않게 돌아가게 된다.

일본이 버블경제로 잃어버린 시기보다 긴 시간을 대대손손 힘겹게 싸워 나아가야 하는 큰 문제들이 얼마든지 산재되어 있다.

국회가 세종이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도 해당 공무원들은 서울의 집을 팔지 않을 것이다.

세종에서 출퇴근 하는 직원들도 아직 많이 있는 것 처럼 차라리 주말 부부를 선택하는 것이 여러모로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누구나 집값의 고공행진을 막아야 한다고 말을 하지만,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닌데 이것을 안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시장에서는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선택을 규제로 막아보려고만 하니까 문제가 더 생기는 것이다.

지금은 선택지를 더 넓혀줄 수 있는 방법들이 나와야 한다.

집중된 곳에 집중을 더 하게 하는 방법보다 집중되지 않은 곳에 집중을 시킬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인데 기업에서 고정 급여를 받는 사람들이나 공무원들은 서울에만 많다.

부디 다음 대선전까지 어떻게 해보겠다는 꼼수보다는 긴 안목과 여유를 가져야 안전하게 정상화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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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축에 대한 오해

최근 체리사의 백축(Clear)이 장착된 키보드를 하나 샀다. 많은 백축에 대한 오해가 이 키보드 하나로 정리가 됐다.

기계식 키보드의 최고봉으로 쳐주는 키보드가 몇 개 있긴한데, 그중에 하나가 해피 해킹이다.
해피해킹은 일본 토프레사에서 나오는 무접점 키보드로 작은 싸이즈와 쫀득한 키감으로 많은 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키보드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 키보드의 키감을 설명할 때 ‘쫀득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 글은 바로 이 ‘쫀득한 키감’에 대한 글이다.

우리가 기계식 키보드를 선택함에 있어서 ‘키압’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체리사의 키압은 45~65g으로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 무게의 감지가 어려운 지경의 가벼운 무게이다.

기계식 키보드는 그 무게의 압력이 가해졌을 때 작동을 하게 만든 개별 스위치들이 달려있는 구조의 컴퓨터 입력장치 인데, 사람들은 이 스위치의 저항감을 가지고 ‘가볍다’ 혹은 ‘무겁다’라고 이야기 한다.

체리사에서 나온 적축 키보드는 가장 키압이 낮은 키보드로 과거에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던 키보드였다.

실제로 사무실에도 적축 키보드가 2개가 있고, 집에서 사용중인 키보드도 적축이다.
키보드의 키압이 낮으면 그만큼 피로도가 쌓이지 않아서 오랜시간 업무를 하면서 키보드를 조작하더라도 손목이나 손가락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실제로 타건의 느낌도 나쁘지 않고 조금 익숙해지면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이 파도를 치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타이핑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적축을 사용하기 헐씬 전 부터 해피해킹을 활용했기 때문에 가벼운 타건감이 그리 반갑지마는 않았다. 그냥 덜 피곤하겠거니… 라고 생각해 왔다.

덕분에 늘 그 쫀득한 키감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가끔 해피해킹을 물려서 아쉬움을 달래곤 했지만, 역시 콤팩트 키보드의 한계를 느끼면서 불편하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백축에 대한 극찬을 하길레 백축 키보드를 구입해 봤는데, “역시 이것인가?” 싶다.

누르는 반발력과 땔때 느껴지는 반발력은 이 스위치의 키압이 70g에 다다른다. 때문에 쫀득한 키의 느낌이 그대로 느껴진다.

물론 우려대로 장시간 사용을 하면 손바닥 전체에 뻐근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만큼 타이핑이 즐거워진다. 스페이스 바를 칠 때 마다 느껴지는 꾸덕꾸덕한 키감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알 수 있을 정도다.

굳이 돈을 들여서 외국에서 녹축 키보드를 들여오고 있다.

녹축은 클릭계열 스위치로 무려 75g의 키압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많이 기대가 된다.

무거운 키보드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사용해보니 그런게 아니였다. 무거운 키보드는 그만큼 쫀득함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디지털 라이프는 상당히 무료한 일이다.
키보드의 키압과 작은 디테일들의 재미는 그 무료함을 조금이나마 덜어 줄 수 있는 재미? 같은 요소가 된다.

https://www.quasarzone.com/bbs/qf_input/views/7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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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음에 대한 찬양

한결같다는 것은 참 중요한 지표인 것 같다.
한결같다는 변화가 없거나 그 변화의 폭이 너무 작아서 감지 할 수 없다는 뜻일게다.

사람들은 모두 변화해야 한다는 말을 하면서 왜 변화하지 않는 것에 대한 찬사를 보낼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지난 시간에 대한 아련함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이 시공간의 세계에 흐르는 시간을 정의하는데 있어서 변화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간의 흐름은 변화를 만들어내고 심지어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 만으로도 우리의 신체는 많은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단순하게 그것을 노화라고 단정짓지 않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허기를 느끼기도 하고 갈증을 느끼기도 하고 이것을 보충하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먹고 또 다시 그것을 배설하는 행위를 하면서 인간은 변화하고 있고, 그 변화에 따라 세상만물이 돌아가고 있다.

나에게 있어서 한결같다는 이야기는 아주 좋은 칭찬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이것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면 변화하지 못하고 과거의 특정한 어떤 시점에 나를 묶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 지라 사회적 지위와 위치의 변화가 해당 인물의 변화를 만들기도 한다.
때로는 그 사회적 위치로의 편입을 위한 갈망이 변화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사실 거의 모든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 처럼 계속 외부의 자극을 수용하고 변화하고 그 변화를 받아드리면서 성장한다.
엄격하게 그것을 성장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과거의 변화를 토대로 새로운 변화의 수용이 가능해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의 입을 통해 한결같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들이 과거에 알고 있던 나와 변화된 나에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은 내가 속해 있는 사회의 변화가 크지 않은 안정적인 곳임을 상징하는 말일 수도 있고, 내가 굉장히 안정적인 사고방식으로 혹은 더 포괄적인 사고방식으로 변화를 수용해 왔음에 대한 반증일 테니…

내가 그들에게서 느끼듯이 그들도 나를 통해 시간이 흘렀다는 것, 혹은 나이를 들었다는 것 보다 과거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 시절에 대한 그리운 마음은 반가움이 되고 그래서 오래된 한결같은 친구를 접할 때면 기분이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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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구해줘 홈즈’를 보면서 느끼는 부동산…

#자산증식 과정에서 부동산의 개입은 당연한 것이다.

사람의 의식주에 연관된 부동산은 크게 주거용 부동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이 ‘땅’으로 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한 15년 전쯤부터 고객의 자산관리를 위해 부동산에 대한 많은 연구를 해왔는데, 요즘과 같은 희기한 현상을 예측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부동산에는 다음의 4가지 자연적 특성이 있는데,

1. 부동성

2. 부증성

3. 영속성

4. 개별성

이 그것이다. 10여년 전 3억대를 호가 하던 아파트들이 10억에 이르게 되는 현실을 볼 때 마다 한숨같은 탄식만 나온다. 이것이 문제이다.

부동적이고 부증한, 다시말해 한번 자리 잡은 부동산의 가격들은 부동산의 유한성 때문에 쉽게 내려오지도 않고 특이하게 주변의 부동산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현 정권에 문제이기도 하고, 이전 정부들이 잘못 만들어낸 작품이기도 하다.

무엇이 문제였냐고?

빚으로 얼마든지 집을 살 수 있게 만든 것이 첫번째 문제이고,

그 빚으로 산 집을 다른 사람들에게 임대하여 수익을 취할 수 있게 함이 두번째 문제였다.

“글의 첫머리에 사람과 관련된 부동산은 주거용 부동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라는 말을 미리 했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부동산은 토지와 그 토지위의 건물까지를 부동산으로 보는 견해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민법에서는 이를 토지와 정착물로 나누어 이야기를 하고 토지와 그 정착물인 건물을 각각 28가지 용도로 나누어 그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발생하고 있는 부동산 대책들의 촛점은 토지의 요건이 ‘대지(대)’이며, ‘단독주택’과 ‘공용주택’에 해당하는 물건들에 대한 핵심을 못 짚고 있다는 점에 있다.

개인이 이런 물건을 1개 이상 보유한다면, 이는 분명 정상적인 목적의 소유는 아니다.

물론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종가집(시골집)이나 기타 사회적으로는 아닐 수도 있으나 개인적으로 유지 보존을 해야하는 역사적인 집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집을 굳이 장자나 종손이 개인명의로 갖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종중자산으로 편입시켜 집안 사람 모두가 해당 부동산에 대한 권리를 항유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더욱이 요즘 같이 자손이 귀한 시절에는 더 그러하다.

특히 주거용 부동산은 부동성과 부증성 때문에라도 1인이 여러채를 보유해서는 안되는 공적자산임에 대한 사회 합의가 있었어야 했다. 그래서 개인이 소유한 부동산의 성격이 ‘주거용 부동산’아라면 이를 임대하거나 담보로 사용해서도 안된다거나 그것은 정의롭지 못한 일로 인식 할 수 있는 장치들이 있었어야 했는데, 역대 정권들이 빚을 내서 집을 사도록 장려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집을 산 사람들이 그렇게 사들인 집으로 무슨 짓을 하던지 장려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그게 왜 문제냐고?

1. 세대의 사람들에게 희망이 없다.

올해2020년 대졸 초봉은 3,233만원이었다. 이것은 세전 금액으로 세후로 계산을 하면 월 실수령액은 많아봤자 260만원 남짓이다.

기본적으로 260만원에서 교통비 20만원, 통신비 10만원, 식음료비 50만원 등등을 제하고 나면 기껏 남아 봤자 100만원 남짓인데, 월세내는 집에서 거주를 한다면, 일단 이 사람이 순수하게 저축을 통해 집을 살 수 있는 확률은 0%이다.

운이 좋아서 주거비가 들지 않는 어떤 환경에 있다고 치고, 자신의 만족 때문에 ‘차’를 구입한 경우 역시 이 사람이 순수하게 저축을 통해서 집을 살 수 있는 확률은 0%이다.

다시 말해서 올해 대졸자들 중에 운이 정말 좋아서 정규직으로 취업에 성공한 누구라도 저축을 통해서 평생 집을 살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는 소리다.

이건 큰 문제다. 세상에 어떤 것도 ‘온전한 내것일 수 없는 세대’의 사람들이 된다는 뜻이다.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그들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인 것이다.

‘망연자실’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정신을 잃는 이유는 어떤 충격 때문에 목표나 목적을 잃게 되는 경우이다. 하지만, 요즘 세대의 사람들은 사회현상 자체가 충격 그 자체가 된다.

취업도 힘들지만, 부모들이 원하는 사람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조건들을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 맞출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이들이 알고 있다.

하지만, 부모들도 이 답없는 세상에 이미 발목을 잡혔다.

2. 이게 옳은 삶인가?

올해 직장생활 10년차인 사람의 경우, 운이 좋아 월 실수령액이 초봉에 비해 2배가 됐다고 치자!(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

독신이고 월에 520만원 정도를 번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경비를 제하고 350만원 정도의 ‘가처분소득’이 발생되었다고 치자!

1년을 모으면 4,000만원이고, 10년을 모으면 4억이다.

결국 40대 중반이 되어서도 저축을 통해서 집을 살 수는 없다.

그전에 빚을 얻어서 집을 사면 되지?

나도 집주인이기도 해봤고, 세입자이기도 해봤다. 이 갑을관계의 전화를 기분 좋게 받거나 끊어 본적은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이 더러운 꼴 당하기 싫어서 집을 구입을 결정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하지만 집을 구매할 때 100% 자기 자본을 활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 빚으로 집을 산다.

문제는 집주인은 개인이지만, 금융회사는 법인이라는 점이다.

주택 구입에 따른 대출을 어떻게든 내어주려고 할 때, 국가의 역할은 중요하다.

2009년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는 갚을 여력보다는 부동산의 담보력을 믿고 있던 사람들의 문제였다.

100만원짜리 집을 담보로 120만원을 꿔주었다.

그 시절 사람들은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 듯 했으나, 그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아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자의 수렁에 빠진 이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고, 시장에 앞다투어 주택 매물들이 쏟아져 내렸다.

주택가격의 하락은 피할 수 없다.

자본주의의 시장환경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그 균형을 만들어 나아가게 되어있다. 물론 정부의 방향성도 시장에 작용하는 영향이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급자와 수요자이다.

진짜 지금의 수요가 진정성이 있는 것이고? 이 진정성 있는 수요가 공급자의 오만한 거래를 용인인하고 있는 걸까?

개인적으로 그것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이 된다.

분양가 평당 2000만원이 넘는 아파트?가 제공하는 토지의 비율은 많아봤자 3%이다.

땅값이 비싸기로 소문난 명동 한복판에 100평짜리 아파트를 구매한다고 해도 기껏 지분은 3평이라는 소리다.

평당(3.3㎡) 6.6억인 명동 한복판에 100평짜리 아파트에 토지가격은 기껏 20억 미만이지만, 아마 이곳에 아파트가 올라가면 분양가는 최소 평당 5천만원은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명동에 100평짜리 아파트는 분양가로만 50억이라는 소리다.

그럼 30억원어치 시공이 들어가는 게 맞냐?

그게 맞겠냐? (평당 3천만원씩 시공을 한다는 것은 100평의 공간에 수직으로 100대의 소나타를 세워 넣는 다는 것과 동일한 말이다.)

빚으로 무언가를 구매한다는 것은 자신의 미래의 여력을 담보하는 일이다.

빚을 낸다는 것은 추가적인 비용을 초래한다는 의미이고, 이것은 자신의 미래를 더 길게 희생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아무도 그 미래가 더 길어질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시절을 살고 있는 듯 하다.

3. 1억을 빌린다?

1억만 빌려서 집을 산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은행 고정금리 자금의 기본 금리는 4.25%이다. 물론 우대 금리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단순한 계산을 위해 다른 가정은 하지 말자.

1억을 빌리면, 1년에 이자가 425만원이된다.

한달에 35.4만원이고,

하루에 1만원 조금 넘는 돈을 돈을 빌렸다는 이유로 은행에 줘야한다.

아직 원금과 관련된 이야기는 시작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을 산다.

당신이 얼마를 빌리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10억짜리 집을 사기 위해서 5억 이상을 빌릴 계획이라면 당신은 그 집을 하루에 5만원씩 은행에 내고 빌리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상황을 샀다고 표현하는게 맞는 걸까?

최악의 시나리오

1. 3040의 After COVID-19

‘영혼까지 탈탈 털어 집을 샀다’는 표현을 처음 들었을 때, 그 결정을 한 사람의 유머코드에 감탄을 했다.

주거 환견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느낄 수 있었다.

부동산 대출에 따른 규제로 LTV, DTI, DSR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매체를 통해 한번 정도는 들어 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규제도 갖갖이 편법으로 우회할 수 있다는 것까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규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혼까지 탈탈 털어서 구매한 사람들’이 만세(항복)을 할 수 밖에 없는 시절이 돌아오고 있다.

아무도 예측 못한 전세계적인 재앙은 ‘자본주의의 붕괴’를 만들어 내고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자본주의는 공급자와 수요자라는 두개의 요소가 만들어 내는 시장에서 가격과 공급량이 결정되면서 조화를 이루게 되는데 과거의 관행과 현행 법률의 제도적인 한계들은 공급과 수요가 물리적인 만남과 표현을 하도록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오프라인 상에서 시장을 만들고 가격을 흥정하고 물량을 결정하는 일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역병 덕분에 오프라인 상에서 해왔던 많은 일들을 국가와 정부가 못하도록 법률로 틀어막고 있다.

이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다수의 희생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임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그에 따라 개인과 사회 방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문제는 이 역병의 문제가 국지적으로 우리나라 한 도시나 우리나라 전역에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고, 전세계적인 유행(팬데믹)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에 가장 큰 문제는 ‘부존자원’이 부족하여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나라라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아닌 나라에 뭔가를 팔아먹고, 그 나라에서 뭔가를 사들여야 계속적인 생활이 가능한 나라라는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잊고 살고 있는 듯하다.

당장 수출길이나 수입길이 막혀서 놀고 있는 회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들이 이용하던 창고나 물류체널들도 일거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일거리가 줄어들어도 금융회사들의 이자납입일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원금상환일도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몇개월째 놀고 있었도 아무도 놀고 있다는 말을 하지도 않는다. 마치 세상은 다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놀고 있는 것 처럼 생각될 정도로 말이다.

소득이 줄어듦에 따라 처음에는 소비를 줄이기만 해도 해소가 될 것 처럼 생각을 하겠지만, 나의 소비는 누군가의 수입이었기 때문에 사회 저변에서 부터 오랜기간 잡혀져 있던 체계들이 부셔져 내릴 수 밖에 없다.

처음에는 소형 가게들이 문을 닫게 되고, 그 소형가게 들에 납품을 하던 중소형 회사들도 문을 닫게 될 것이다.

중소형 회사들의 몰락은 대기업의 생존에도 위협이 될 수 밖에 없는데, 이 막대한 파장의 핵심은 ‘영혼까지 탈탈 털어서 집을 샀던 3040’이 있다.

지난 1999년 IMF 구제 금융시절과는 많이 다르다.

IMF 시절 1998년 한해동안 집값은 19%가 빠졌다. 그리고 2002년까지 4년동안 연평균 10%가 넘게 싸졌다.

반토막이 난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최소한 우리나라의 성장동력이었던 수출이 살아있었지만, 지금은 수출길이 그리 쉽지 않다.

게다가 중국의 성장과 미국의 베타적 무역, 유럽의 변화, 남미의 경제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더라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 되어 버렸는데, 이상하게 우리나라 주거용 부동산은 고공행진이다.

게다가 최근 발표된 주식거래세법과 소득세법의 개정안은 그나마 자금시장의 자금도 갈곳을 잃게 만들었다.

그나마 3040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이 다 묶여버린 것이다.

정부는 최악의 역병 상황에 최악수를 둬버리는 어리석은 일을 한 것 같다.

소득이 줄어들게 되거나 아예 소득을 만들 수 없는 지경의 3040은 자신이 보유한 빚으로 만든 부동산을 매매하려고 할까?

아닐 것이다. 제 2 금융권과 제 3 금융권 등에 추가 대출을 문의하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이라 생각할 것 이다.

어짜피 부동산이 떨어질 것은 만무하고, 만약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나만 피해보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는 포석을 둘 것이다.

결국 손해보는 것은 금융사?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이 되었지만, 이것에 대한 원리금 상황이 정상적이지 않게 되면 ‘금융사’에서는 이를 압류예고하고 법원의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처분을 하게 된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빨간딱지’이고, 경매라는 것이다.

LTV가 존재했기 때문에 1순위 금융사는 손해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후순위 금융사들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이제부터라도 제2금융권이나 제3금융권의 금융사들은 자사의 고객을 인질로 삼고 정부와 또다른 줄다리기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미 준비를 하고 있는 제3금융권의 모습도 보이긴 하지만, 딱히 어디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2. 7080의 수명

해방둥이 분들의 여명이 그리 오래 남지 않은 시절이다.

70인 내게 현재 싯가로 10억짜리 아파트가 있고, 내게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만약 내가 죽게 되면 어떻게 될까?

아들은 (10억*30%) – 6천만원 = 2.4억 을 상속세로 납부해야 비로서 아버지가 물려주시는 10억짜리 아파트를 온전히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아들에게 2.4억이 있냐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40대 중반까지 대기업에서 승승 장구하면서 착실하게 돈을 모은 사람이 4억 모을 수 있는데, 이 사람이 중간에 차를 샀거나 집을 샀다면 돈이 있을 턱이 없다.

부동산 시장에 또 다른 형태의 공급자가 발생할 수도 있음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게다가 부모의 재산은 남겨진 자식이 1명인 경우에는 문제가 별로 없지만, 1명 이상의 자식들이 존재하는 경우 그 처분을 다소 과감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이미 자신이 삶은 부모의 삶과는 다른 패턴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냥 누가 사겠다고 하면 별다른 흥정없이 빠른 현금화를 원하는 경우도 다반사이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의 가격이 왜곡될 수 있는 요지도 다분하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시장은 큰 변수들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

대책?

정부가 의지만 가지고 있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대책들은 만들 수 있다.

첫번째는 현재 과열되어 있는 주거용 부동산 시장을 연착륙 시키는 방법이다.

물론 이 방법에는 정치적인 계산도 고려되어야 하겠지만, 1년에 5%씩 앞으로 10년 정도 안정화시켜야 금융기관의 부실화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싫다면 다음 정권에 이 문제들을 다 떠넘기면 되겠지만…

주거용 부동산을 연착률 시키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한사람이 1채 이상 주택을 못갖게 하면 되고, 2채 이상 소유시 그가 주택을 1채 이상 소유하게 됨에 따라 예상가능한 모든 소득을 현재 수준의 10%정도만 얻을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전세를 놓게 되면 전세 금액에 대한 과세하고, 월세를 하게 되면 세금계산서나 현금영수증 발급의 의무화를 통해서 가능하게 할 수 있다.

만약 이를 거부한다면 과징금 때려서 소유권을 박탈 시키는 방법도 있다.

물론 단계별로 진행되야 반발이 없을 것이다.

두번째는 급속냉각방법이다.

일단 최근 3년간 주거용 부동산 거래를 전수 파악하여 세무조사를 벌이는 방식이다.

판 사람도 캥기는 부분이 있을 텐지만, 산 사람에게 더 많은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과징금, 과태료들을 대폭 확대하여 직전 3년간 3회 이상 부동산 거래가 있었던 사람들을 조사하게 되면 많은 문제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시행일을 명확하게 밝히고 소급적용하겠다는 표현만 해도 매도 물건이 많이 생기리라…

세번째는 주거용 부동산의 임대를 주업으로 하는 부동산 관리법인을 없애야 한다. 판매할 사람을 시장으로 불러들이는 것 만으로 가격을 낮출 수 있다.

오늘 구해줘 홈즈에 나온 10평도 되지 않는 빌라의 전세가 2억이 넘었다.

그녀들은 자신들이 2억을 벌기 위해 얼마간의 시간이 소요될 지 전혀 감지조차 못하겠지만, 그마져도 빚을 얻어야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라면…

속이 답답해서 몇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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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생각)은 ‘지적유희’일 뿐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

우리가 말하는 생각한다는 활동.
우리가 표현하는 생각한다는 활동은 단순한 ‘지적유희’인가?

아침부터 칸트에 대한 책을 읽다 보니 갑자기 생각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우리가 하는 생각이라는 활동은 실제로는 실체하지 않는 활동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나의 내부에서는 생각이라는 활동이 계속되고 있겠지만, 이것이 표현되기 전까지 다른 이들에게 관찰되지 않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alpha-zone theory와 아주 유사하다.

우리는 상상을 통해 많은 경우의 수, 즉 가능성에 대한 추측을 한다. 지금 말한 가능성, 추측은 다 존재하지 않는 하지만 존재할 수도 있는 것을 말한다.

지금까지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존재할 수 도 있고, 논리적인 증명을 통해 이것이 ‘참’이 되었던 ‘거짓’이 되었던 간에 우리가 머릿속에서 진행되는 생각을 통한 논리적 증명을 실제 세상에서 시행함에 따라 다른 사람들에게 관찰되기 직전까지가 바로 ‘생각’ 이라는 것이고, 이것은 단순한 지적유희… 그러니까 ‘놀이’냐?에 대한 궁금함 이 생긴 것이다.

우리가 생각을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정말 많이 있지만, 그것은 실제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하지 않는 것은 그냥 놀이에 불과한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이 한 일들은 무턱대고 시작을 하거나 일단 저질러 놓고 보는 식의 일이 거의 없다.

일반적으로는 ‘통밥?’을 본다고 해서 건성으로 라도 계획을 세우고 전략을 세운다.

혼자하는 일이라면, 그 성패를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일의 진행 순서를 짠다던가 성공을 하게 된다면? 혹은 실패를 하게 된다면? 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여럿이 하는 일이라면, ‘A’는 무슨 일을 하고, ‘B’는 무슨 일을 맡아줘! 나는 무슨 일을 할테니… 이런식의 어떤 생각도 가능하다.

결국은 인간에게 ‘생각’이라는 것은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 그 가능성을 점쳐보고, 보다 성공이라는 요건에 가까울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의 방법이다.

이런 경우에는 단순한 유희로 치부하기는 다소 어렵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결론’이 난 경우고 ‘결론’이 나지 않는 어떤 형태의 생각들이 있다.

소위 무한 루프에 빠지는 생각들인데,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형태에 생각이다.

순차적인 순서의 복제가 가능한 어떤 상황들이 만들어 내는 오류인데, 이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에서도 발견되곤 한다.

어떤 조건의 값이 참이 나와야 종료가 되는 어떤 반복문에서 참이 나올 수 없는 조건을 수행하는 경우가 그렇다.

이게 처음에 한두번 정도의 도전까지는 재미가 있는데,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의 어떤 상황에 이르게 되면 지루해지고 권태로워지다가 결국은 포기하고 절망에 빠지게 된다.

뭐 아주 극단적인 사례이기도 하지만, 자살을 선택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의 어떤 순환에서 명확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계속 반복해서 나쁜 조건의 생각들만 지속적으로 진행하다보니 결국 포기하고 절망에 이르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다시 원점의 생각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생각의 형태가 문제의 각성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대부분의 생각의 시작은 어떤 문제의 인식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생각의 시작이 문제인식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모른다.

어떤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 중에 가장 손 쉬운 방식이 바로 생각인 것이다. 그 문제의 해결이 실제하기 위해서는 실제에서의 물리적인 노력이 필요하지만, 아직 실제하지 않았고, 그 해결을 위한 방법은 수백 수천 수만가지도 더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내 경험상 오랜시간 생각을 해서 아주 좋은 1가지의 경우를 선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적당한 시간에 생각된 여러가지 중 그나마 성공의 확률이 높다고 생각되는 것을 하나 선택해서 일단 실행해 보는 것이 가장 결과적으로 좋았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유희’로 변질 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생각만 하고 결론을 못짓는 경우다.

결론을 못짓는 다는 것은 무한루프에 빠졌다는 것이거나, ‘실행’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좋은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그게 ‘실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물론 모든 생각이 어떤 행동지침을 목표로 시작되지는 않는다.
어떤 생각은 ‘도덕적 잣대’를 만들기도 하고 ‘도덕과는 다른 지적 판단의 기준’을 만들기도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생각의 발로가 ‘문제인식’에서 부터 이기 때문이다.

난 단순하게 상상, ‘생각하는 힘’을 지적유희라 치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상을 하던 생각을 하던 공상을 하던 그것이 그것으로만 남아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한다.

실행을 하거나, 기록으로 남기는 노력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앞으로도 더 행복한 공상가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