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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과 돈벌기

https://news.nate.com/view/20200527n00159?mid=n1006

위 기사의 댓글을 읽다 보니 어떤 이의 댓글이 눈에 밟힌다.

80년대에도 90년대에도 학벌이 좋아서 돈많이 벌던 시대가 아니다. 그건 2000년대에도 2010년대에도 그래왔었고,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람들은 ‘돈’에 대한 이해가 너무 없다. ‘돈’의 정의가 없는데 어떻게 돈을 벌 수 있겠는가?
하물며, ‘돈’을 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돈’을 모을 수 있겠는가?

과거 시절에 학벌이 좋아야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은 지나치게 자신이 돈을 못번 이유가 공부를 못해서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이 공부를 못한 이유를 학비를 제공해주지 못한 부모에게서 찾는다던가 적절한 과외 등의 사교육이 부족해서라고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그렇다.

학벌이 좋은데 돈까지 잘 벌려면, 대인관계도 잘해야 하고 무엇보다 위계가 있는 조직에서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기 보다는 상명하복에 대한 이해가 높으면 됐다.
공부를 많이 한 덕에 돈을 많이 번것이 아니라 공부는 조직에 들어가기 위한 입장권 같은 것이고, 들어가게 된 조직에 오랫동안 머무르는 것이 돈을 벌게 해 주는 것이라는 의미다.

그 조직은 다음과 같다.
대기업, 공기업, 중앙정부, 사법기관, 지방정부…
정년이 보장되는 아주 안정적인 직장이라고 생각되는 곳들이다.

그것이 ‘입신양명’이고, ‘출세’인가 하는 생각은 두고두고 나의 숙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풍조 때문에 더욱 명확해진 것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의미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사람들은 노동자에 의해 학습을 배운다.

그 노동자적 감성이 교육과 학습을 지적 이데아로 이끌기 보다는 “나같은 인생을 살지말고, 너(학생)는 좋은 조직의 입장권을 끊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 그것이 너의 부모님이 원하시는 것이기도 하고 그게 ‘효도’하는 길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친구들과 경쟁해서 이겨야 한다.”는 특이한 논리로 평가를 위한 교육으로 아이들을 지나치게 소비시킨다.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바는 ‘잘 살기’가 분명하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쉴 수 있으면 분명히 잘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엄청 많은 돈이 필요할 것 같겠지만, 사실 그것도 아니다.

‘잘’의 정도를 어떻게 잡는가에 따라 다르지만, 여하튼 먹고, 입고, 쉬기 위해 들어야 하는 비용이 그리 많이 들지는 않는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어떻게든 그 호기심을 풀어내고자 하는 탐구적인 사람도 있지만, 탐구에는 별 관심도 없는 이들도 상당수 있다.
탐구에는 별 관심 없지만,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좋아하고 특별한 조건이 부가되지 않더라도 스스로 행복한 방법을 알고 있는 이들 말이다.

모두가 진학을 해야하는 것 처럼 사회가 몰고가는 영향이 없지 않아 있지만, 탐구적인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모두 진학한 덕분에 학교가 아주 난잡해졌다.

학교를 정치적인 색깔을 갖추고, 이념으로 사람을 무장시키는 기관 세뇌시키는 기관으로 변질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이런 시국을 걱정하시는 어른들도 계시니 말이다.

순수하게 인류를 위해 학문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은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사실 그 이유도 ‘돈’에 있다.

학문을 하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한데, 이 ‘돈’이 ‘돈’을 벌지 못할 것 같은 곳에는 모이지 않는다.

가령 내가,
“‘단군신화에 대한 연구’를 하려고 하니 지원을 해주쇼~” 라고 했다고 가정하자.

누가 연구지원을 할 수 있겠는가?

왜 연구지원을 하지 않겠는가?

대한국민이라면 시조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문제는 시조에 대한 사실을 안다고 해서 그 사실이 돈으로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돈이 되지 못하는 연구에는 자금이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푼돈이 들어오고, 그 푼돈으로도 연구하고 싶은 사람이거나 다른 연구 주제에 참여하지 못한 떨거지들이 모여서 애매모호한 결과들을 도출시키기 때문에 결국은 연구자체의 의미가 없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어느시점 부터 ‘시장논리’, 그러니까 ‘돈의 이유(의미)’에 따라 좌우되는 시대에 접어들었고,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의대에 입학한 어떤이가 내게 특이한 자신의 교수의 질문을 들려줬는데, 이것은 참으로 오랜 여운을 만들어 냈다.

지금 부터 여러분이 졸업을 해서 인턴을 나가고 레지던트를 겪은 후에 전문의가 될 때까지 투자해야 되는 시간은 10년이고, 경제적으로는 돈이 약 1억이 듭니다.

그렇게 투자를 했다고 여러분이 매년 1억이상을 벌 수 있는 의사가 될 수 있을지도 불분명합니다.

차라리 지금 1억을 투자해서 10년간 갈비집을 운영하는 것이 돈을 버는 것에는 더 유리할 수 도 있습니다.

앞으로 최소 10년간은 하루에 3~4시간 밖에 자지 못하고, 일년에 하루도 못쉴 수 도 있고, 당신은 일반적인 사람이 겪는 가장 우울하고 슬픈 환경에 노출될 수도 있습니다.

하루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선택하시고 내일 등교여부를 결정하세요.

모 의과대학 교수님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준 사람의 의지가 다행히 ‘돈을 벌기 위해서 의사가 되겠어!’는 아니였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웃어넘길 수 있었지만, ‘돈을 벌기 위해 의사가 되겠어!’라고 생각을 했다면 글쎄다. 심각한 고민이 필요한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 다음날 등교를 하지 않은 이도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돈’은 해당 경제권역(해당 ‘돈(화폐)’으로 경제활동이 가능한 물리적인 지역/공간)에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신념이다.

그리고 이 신념은 ‘가치의 척도’이다.

따라서 ‘돈’을 벌겠다고 하는 사람은 ‘가치’를 값어치 있게 인정받을 수 있으면 된다.
기껏해야 자신의 물리적인 시간을 지시에 따라 기계적으로 제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사람의 ‘시간’의 가치는 같은 물리적인 시간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다지 높은 값어치를 받을 수 없다.

생각해보자,

A라는 고깃집과 B라는 고깃집이 있는데 A와 B는 가격도 같고, 맛도 같다. 이런 경우 당신은 A와 B 중에 어떤 식당으로 가겠는가?

당연히 고민되겠지만 이 사례에 변수하나를 더 등장시키면 고민이 좀 덜 수고스러워 질 것이다.

A는 바로 집앞이라서 걸어서 5분 이내에 도착이 가능하고,
B는 차로 1시간을 이동해야 한다.

당연히 A를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어야 한다. 이동에 따른 시간을 경제적 가치로 평가한다면, A로의 이동은 시간적으로 55분의 불필요한 비용을 치르지 않아도 되고, 차량이 이동하면서 부가적으로 소비해야할 비용에 대해서도 고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례에 다른 변수를 하나 더 첨가해 보자.

A는 다소 지저분한 상가에 1층에 다소 낡은 허접한 인테리어로 되어있는 식당이고, B는 교외에 깔끔하게 지어진 최신식 단독 식당건물로 주변에 경관마저 힐링이 되는 곳이다.

단순하게 식사에 목적이 있다면, 지저분한 상가이거나 말거나 이고, 낡고 허접한 인테리어이거나 말거나 식사만 하면 된다. 하지만, 두식당의 1인분 식사 가격이 5만원이라고 하고, 4사람이 식사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에는 기왕에 ‘돈 쓰는 거’라는 생각 때문에 ‘좋은거 하자’는 의외에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경제적 관념”은 ‘돈을 쓰는데’에도 반영되지만,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돈을 버는데’에도 활용이 가능하다.
문제는 ‘돈을 버는 것’은 고려하지 않고, 남들이 다 그렇다고 하니까 ‘돈을 벌기 위한 조건’에 촛점을 두고, 심지어 그 촛점도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이라는 엉뚱한 곳을 향한다는 것이다.

공부를 많이 해야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면, 학사 아니라 석사 박사 그이상의 공부를 한 사람은 재벌이어야 한다.

우리 부모님은 나를 ‘관료’로 키우고 싶어하셨다.
내 적성은 ‘관료’이기 보다는 ‘기술자’이고, ‘장사치’였는데도 그런 내 적성을 알아보시지 못하시고, 오히려 ‘기술자’들의 품행을 폄하하셨고, 중고거래를 하던 내게 ‘장사치’가 될 거냐고 다그치시기도 하셨다.

이는 성장과정에서 많은 혼란을 가중시켰다.
왜냐하면, 그렇게 평가를 하셨지만 내 부모님도 돈이 넉넉한 분들은 아니셨기 때문이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돈’을 벌겠다고 하는 사람은 ‘가치’를 값어치 있게 인정받을 수 있으면 된다.

기존에 없던 신기술은 기존의 기술을 얼만큼 극복하고 추가적으로 어떤 편리함을 제공할 수 있는가에 따라 차별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신기술을 만들려면 과거로 부터 이어지는 기술에 대한 이해와 추가적인 ‘순수한 호기심’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순수한 호기심’은 “이것이 ‘돈’이 되는 기술이다”라는 명제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꼭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것이거나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돈’이 되는 기술은 ‘돈’이 많은 사람이나 조직에 의해 이미 연구가 되어 있고, 되고 있고, 될 수도 있다.

진정 ‘돈’을 벌기를 원한다면, 영업을 배우고 익히길 추천한다.

영업의 기술을 깨닭게 되면, 자신이 취급하는 제품 혹은 서비스에 차별된 가치를 부여하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

같은 제품을 팔더라도 잘파는 영업사원 A와 못파는 영업사원 B가 존재한다.

영업의 기술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가치를 납득시키기’이다.
A는 제품의 가치를 고객에게 이해시킨 사람이고, B는 고객에게 이해를 못시켰거나 스스로도 이해를 못한 사람일 수 있다.

굳이 내가 돈을 써서 이것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가 합당하면 사람들은 돈을 쓰고, 이것을 다른 말로 ‘구매’라고 한다.

그리고, 이에 상대 행위자의 입장에서는 ‘판매’라고 한다.

공부를 많이 해서 결국 어떤 조직이나 회사에 들어간다고 하면, 그 공부를 많이 한 가치는 그 조직이나 회사의 잣대에 맞춰질 수 밖에 없다.
연봉을 많이 제시해서 그 회사에 지원했고, 입사하게 된 덕분에 그동안의 공부한 가치는 딱 그 금액으로 정해지는 것이다.

80년대 90년대가 아니라서 공부 많이 했다고 성공하고, 돈 많이 벌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고?

그 시절에도 돈 번사람들은 다 나름대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노력’들을 해왔고, 그런 이유로 자타가 인정하는 성공도 한 것이고 그 댓가로 가치를 인정받아 돈도 벌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신은 무슨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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