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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흐름

보통은 ‘맥락’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어떤 이들은 ‘맥락’이 있는 이야기를 하고,
어떤 이들은 ‘맥락’이 없는 이야기를 한다.

때로는 어떤 이들은 고의적으로 ‘맥락’을 끊기도 하고,
없던 ‘맥락’을 만들기도 한다.

엄밀하게 보면, 맥락을 쥐고 있는 사람이 이야기의 주도권을 갖은 사람이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 되어 어떤 결론과 메세지를 이 이야기에 참여했거나 이 이야기를 듣게 되는 이들에게 전달해야 하는지를 아주 명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목적을 갖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거나 이야기에 참여하게 되는 경우 ‘말’자체를 즐기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이들이 비율적으로 항상 높게 나타난다.

때문에 ‘맥락’을 짚는 일, 그리고 그 ‘맥락’속에서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이 ‘맥락’을 끌고 가야하는지를 명확하게 아는 이들은 위험할 정도로 논리적이고, 놀라울 만큼 감정의 호소도 잘한다.

‘맥락’을 끊어 버리는 일도 사실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데, 사람들이 그것을 잘 못한다.

어제는 6주기 세월호 참사일이였다.

아쉽고 애뜻하고 슬픈 일이다.

사실 그시절 나도 5년간 진행하던 사업에 문제가 생겨서 잠못이루던 시절이라 한참을 밤을 새가면서 세월호의 진행과정을 팽목항에 사람들과 같이 TV로 접했다.

그 시절 TV는 예능프로그램도 해서는 안되는 ‘국가적 애도’기간이었다.

공중파 3사는 경쟁하듯이 실시간으로 팽목항의 상황을 전파했고, 뉴스 이외의 프로그램은 하나도 없었다.

그 시절 나는 무척이나 궁금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시간으로 어떻게 돌아갈 수 있을까?

어떤 시점 부터 TV는 사람들에게 다른 세상의 모습을 점잖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자연 다큐멘터리와 동물 다큐멘터리 같은 프로그램으로, 하지만 절대 맥락을 끊지는 않았다.

그러더니 점점 그 관점은 사람을 향하고, 사람들 사이에 작은 웃음으로, 그 웃음소리는 점점 커지더라.

예능프로그램도 인트로에서 ‘국가적 애도’에 따른 위로를 덧붙여서 작은 웃음에서 점점 큰 웃음으로 이어나갔다.

어느새 맥락이 끊어졌다.

사람들 간의 소통에서 단 3초 만에 아주 짧게 끝나는 ‘첫인상’과 같은 소통도 있고, 10년 이상 걸리는 아주아주 긴 소통도 있다.

이 맥락을 어떻게 디자인하고 끌고가는가?하는 부분은 이 이야기를 이어가야 하는 이유가 있는 이들에게는 아주 중요하다.

절대 이유없는 무덤은 없다.

이야기가 흘러 어딜 향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는 어떤 이유가 있는지도 알 수 있고, 이 이야기의 방향을 바꾸는 방법이나 바뀔려는 순간 다시 낚아채 올 수 있는 기술도 갖고 있을 것이다.

이 수싸움에 너무 오랜시간 노출 되었었나보다.
사실 내가 요즘 좀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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