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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한다는것에 대한 소회

 

 

나의 어머니는 내가 음악을 하는 것을 너무 싫어하셨다.

물론 어머니는 내가 음악을 얼마나 알고 얼마나 해왔는지 지금도 알지 못하신다.

 

92년 처음 낙원상가에 상훈이라는 친구와 갔을 때,

나는 완전 신세계를 보았다.

아타리라는 아주 작은 컴퓨터…

 

그게 내가 처음 본 시퀀싱 장비였던 것 같다.

 

내기억에 35만원쯤 했던 것 같다.

내가 처음 샀던 싸운드 모듈이… 롤랜드에서 나온 싸운드 캔바스 55

그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 친구였던 의중이가 했던 이야기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자동차에서 오디오 떼어왔냐?”

 

그시절 음악을 한다는 녀석들은 얼터너티브를 표방하는 밴드활동을 했고, 나처럼 미디음악을 하는 놈들은 참 들물었다.

 

원맨밴드라는 말이 처음나왔을 시절. 그시절에 대한 소회다.

 

궁하고 궁하게 살면서 한곡 뜨면 인생이 바뀐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물론 한두곡 대 히트를 쳐서 팔자 고치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하지만,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더라.

그 당시 내가 살던 아파트는 복도식이였다. 미디로 MR을 만들고, 다이랙트로 2체널 가이드 뜨면서 너무 더워서 창문을 열어놓고 있으면,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이 ‘노래 잘하네~’ 하시면서 지나가시던게 기억이 난다.

 

가끔 그때 가이드 떴던 곡들을 들어보곤 하는데, 가사가 대부분 아주 어리다.

댄스와 힙합곡을 주로 썼는데 간혹 작업한 롹발라드곡이나 발라드 곡은 아직도 들을만 한게 참 괜찮다.

 

한두곡 가이드 떠서 테이프에 담아서 이런 기획사, 저런 기획사 쫄래쫄래 쫓아다니면서

“한번만 들어보세요.”

라고 외치던 녀석이 드디어 그 음악을 인정해주는 기획사를 발견하게 된다.

 

맨날 쇼윈도 넘어로 군침만 흘리던 샘플러도 직접 다룰 수 있게되고, 녹음이 있는 날이면 시퀀싱된 MID파일을 디스크에 담고, 작업했던 장비를 바리바리 꾸려서 랙에 담고 짊어지고 녹음실가서 쏘다가 통금시간 때문에 잠시 집에 귀가 했다가 아버지 주무시면 또 나가서 쏘고…

 

그렇게 몇곡의 작업을 하고 삶에 히열도 맛보고

 

그러다 친구들 보다 좀 늦은 시점에 군대를 갔다.

군대를 갔다와보니 세상이 정말 많이 변해 있었다.

기획사에서 나를 발굴해줬던 형님은 지금은 유명해졌지만, 당시에는 그닥 유명하지 않았던 기획사에서 부장급 매니져를 하고 계셨고,

세상은 힙합을 하고 있더라.

 

‘1999 대한민국’이라는 음반이 발매되서 언더그라운드에서 음악하는 이들이 더 이상 얼터너티브 밴드만 있는 것은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힙합의 MR은 샘플링 음악이라 화성도 필요없고 딱히 두드러지게 배워야 하는 것도 없었다. 단순하게 무식한 100%샘플링 음악이 아닌 조금의 변조 화성이나 오브리 따위만 넣어도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는 세상이 이상했다.

 

음악은 점점 가벼워졌다.

어쩌면 이때부터 였던 것 같다.

음악에 대한 회의가 느껴지던 시점이…

 

점점 꺼져가는 열정을 잡기 위해 난 장비를 사모았다.

장비를 사기위해서 일도 참 열심히 했다.

돈이 필요한 이유는 딱하나~!

장비가 필요했다.

장비만 있으면 음악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몇 년이 흐른뒤 깨닭게 되었다.

 

G-TROOP.

https://youtu.be/DmbdJEtMAK0

 

2006년 1월이였으니… 이제 거진 10년이 되가는 이야기이다.

매주 토요일마다. 동생들 모아놓고 뭔가 다른 꿈과 환상 같은 헛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나는 할 수 있다 이거나 해보자로 선동하는 일에는 확실히 일가견이 있다.

 

매달 1인당 3만원씩이였나? 회비 걷어서 간식도 사먹고, 연습실 랜탈비도 내고

그렇게 모여서 마지막 20대를 불태워보겠다고 부단히도 지랄을 했던 것 같다.

 

몇 차례 작고 작은 무대에 올라보고 결국 우리는 뿔뿔히 흩어졌다.

서로 먹고사는 일이 우선이 되어버렸고, 그 변화에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내가 먹고 사는 문제로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 한놈씩 두놈씩 장가를 가고, 우리는 완전히 와해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 꿈도 완전히 사라진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벌써 10년이 넘은 이야기구나.

 

그후로도 나는 참 많은 장비들을 사모았다.

물론 음악은 만들긴 한다. 하지만 쉽게 완성을 못한다.

뭔가 아쉽고, 이 장비에는 이런 부분의 문제가 보이고, 저 장비는 저런 문제가 보이고…

 

안되는 이유는 모두 장비 탓일뿐 내가 잘못했다거나,

내 개인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인정은 해본적이 없는 것 같다.

 

3년전에 나가수에 임재범씨가 나왔을 떄 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저런 쇼에 나올 분이 아닌데…”

 

어쩌면 나는 너무 멀리 생각이 앞섰던 것 같다.

‘작은 무대’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음악은 누군가에게 들려지고 그게 회자되고 불려져야 비로서 음악으로 생명력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나이에 요즘 걸그룹들 처럼 헐벗고 무대에 올라 궁딩이를 방실방실 거릴 수도 없는 문제이고,

 

귀로 들을 수 있는 음악을 하자.

꼭 장비가 필요한 경우보다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귀로 들을 수 있고,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을 하자.

 

내 형제들과 음악적 교감을 원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난 nALBUM.com 프로젝트도 연내 마무리 할 계획이다.

 

귀로 들을 수 있고,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음악을 하자.

결국 상업적인 성공은 그리 오래지 못하는 것 같다.

요즘 같은 문화권 하에서는 오늘은 관심이 되나 내일은 다른 녀석이 그 자리에 있더라.

 

내 음악을 하자.

내 소리를 내고

내 생각을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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