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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글을 쓴다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까?

 

사람이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실제로 무서운 상황을 인지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한 상상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5감을 활용한 자극의 수용을 한다.

그중에 단연 으뜸이 되는 것은 시각적인 것이고, 그중에서 가장 떨어지는 것이 미각적인 부분이다.

 

본다라는 것.

 

본다는 그 자극 이후에 수도 없이 많은 논리 구조가 생성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만들어 내고 있는 수많은 생각들은 그 기원에 우리가 경험을 한 “본 것~!” 들이 존재하는 경우가 정말 많다.

 

 

가장 많은 자극을 수용할 수 밖에 없는 것도 바로 시각적인 것이다.

인간은 자고 일어나서 다시 잠에 들때까지 지속적으로 눈으로 자극을 수용한다.

 

물론 후각적인 요소들이나 청각적인 자극도 분명 존재를 한다.

 

하지만, 후각적인 자극은 잠시간의 시간이 흐르면 그 감각이 무뎌지게 되어 있고,

청각적인 자극은 엠비언스(환경소리)를 필터링 하기 위해 필요한 소리들만 골라 듣는 이상한 감각 기관이다.

 

하지만, 눈은 그렇지 못하다.

인간이 이동을 하기 위해서 눈은 쉴 수 없이 많은 자극들을 수용한다.

한발 이동할 때 그 이동을 위해 딛었던 발을 때어 다시 위로 이동을 할때도 인간의 눈은 자신의 신체와 공간간의 변화하는 것을 모두 수용하고 있게 된다.

 

글은 바로 그런 눈이 수용을 하는 것이다.

눈은 습관적으로 한 자씩 훝고 그 글자들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단어의 의미를 인지하기 시작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는 책을 읽는 것을 무척이나 즐기는 편이다.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지만, 책을 읽는 동안 칭찬을 들었던 경험이 많다는 것도 내가 책을 읽는 습관을 갖게 된 이유가 아닌가?

 

그런 내가 글을 쓰고 말을 하는 기술이 다른사람에 비해 월등히 좋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일반인들이 잘 활용하는 어휘보다 더 많은 어휘를 사용하고자 부단히 노력을 해왔다.

 

난 지적인 내용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지적을 받는것이 싫다.

아마 그런 이유에서 더 많이 글을 쓰는 것이 좋은지도 모르겠다.

 

처음 단편을 써보자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중학생 시절로 올라간다.

그 시절에 나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내 주변의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왜 우리 엄마나 아빠는 친구들의 부모만큼 해주지 못할 까에 대한 고민을 참 많이도 해 왔다.

그래서 도전해 본 것이 MBC에서 주관했던 베스트셀러극장 극본 응모였다.

 

그 당시에 200자 원고지로 약 4000매가량을 수기로 작성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에야 컴퓨터로 작성해서 그걸 이메일로 발송하면 되지만, 그 시절에는 보자기에 원고지 들고 가서 접수하고 접수증 받아오던 시절이였기 때문에 내가 과거에 그렇게 많은 글을 썼다는 것에 대한 증빙을 남기지 못함이 내내 아쉬울 뿐이다.

 

글을 쓰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들이 꼭 명심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대부분의 글은 작성하는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글은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게 된다.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글을 작성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한 개의 글에 다수의 목적을 부여하는 경우도 있다.

영화극본의 예를 들면, 세계 평화와 사랑 모 이런 두가지 토끼를 잡고자 하는 경우가 있는데, 최근에 유명배우 다 몰아넣고 잘 안된 아이리스2만 봐도 중의적인 목적을 부여하는 작업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감을 할 것이다.

 

사랑이야기를 쓰겠어.

아~ 해피로 끝나야지…

 

 

이렇게 시작을 하면, 우리는 행복에 대한 정의를 만들어 내야 한다.

우리가 어린시절 읽어왔던 거의 모든 동화에 나오는 결말은 “그 후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데요.” 이다.

 

이런 진부한 결론을 내리려고 호박이 마차가 되고, 목각인형이 살아 숨쉬고, 지니가 튀어나오고 모 이런 대서사극들이 생성이 되는 거다.

 

우리에게 행복에 대한 정의가 “없는 것” 혹은 너무 “다양한 것”은

우리가 그만큼 행복에 대해 잘 모른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사실에 대한 정의를 내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작가의 의도대로 독자들이 해석을 할 수 있도록 작성을 하는 것이 요령이 되지 않을까?

 

글을 쓴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글을 본다는 것

 

이것은 둘 다 아주 중요한 관계이다.

한 사람은 부여하려고 하고, 한 사람은 수용할지 말지 갈등속에서 글을 접하게 된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작가와 동감할 수 있는 부분이 생겨서 비로서 글에 몰입하게 되는 순간 비로서 작가의 세계가 독자에게 펼쳐지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작가인 나의 세계를 독자인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창구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일단락 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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